<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구약 } 창세기 45장 1-5절 …. [1] 요셉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자기의 모든 시종들 앞에서 그만 모두들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주위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고, 요셉은 드디어 자기가 누구인지를 형제들에게 밝히고 나서, [2] 한참 동안 울었다. 그 울음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밖으로 물러난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들리고, 바로의 궁에도 들렸다. [3]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고요?” 요셉이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으나, 놀란 형제들은 어리둥절하여, 요셉 앞에서 입이 얼어붙고 말았다. [4]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니, 그제야 그들이 요셉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5]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마는,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 = * 이집트 총리였던 요셉이 형들에게 자기를 알릴 때까지는 그의 시종들과 이집트 말로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이 시작하는 45장부터는, (그의 시종들을 다 내보낸 다음) 그는 약 20년 만에 형들에게 히브리말로 말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말을 다시 들어봅니다.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마는,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45:5) 얼마나 자비에 가득찬 말입니까? 형들이 몸 둘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다 요셉의 이 자세를 닮아 살고 싶지 않습니까? 기막히게 용하디 용한 용서입니다. 용서를 빌 사람들을 대신하여, 피해자인 요셉이 도리어 마치 변호사처럼 변명을 해 주지 않습니까? 그것도 첫 마디가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들을 용서할 때에 말하는 언어와 흡사하지 않습니까? 용서와 화해의 의사가 분명한 언어, 사람을 살리는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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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태복음 10장 11-13절 …. [11] 아무 고을이나 아무 마을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서,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 [12] 너희가 그 집에 들어갈 때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래서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알맞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에 있을 것이고, 알맞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오게 되리라.
* = * ‘샬롬 레카!’(Peace to you!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기를!) 이것은 유대인의 전형적인 인삿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인사법을 좋아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인사를 그냥 치레로 하게 두지 않으시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화해)를 빌어 주는 인사이기를 바라셨습니다.
진정한 평화란, 하나님과 화해함으로 이루어지는 평화를 의미했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평화(화해)를 얻으려면,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담벽을 무너뜨려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한 영혼 한 영혼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면 이 세상에는 진정 평화가 올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모든 전도자(모든 성도를 포함)는 ‘화해(샬롬)의 중재인’ 이라는 선언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정성과 힘을 기울입시다.
<기도>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해의 제물로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를 또한 하나님과 저희 이웃사이의 화해의 중재인으로 삼아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저희가 이 영광스러운 화해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