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변화시키는 말씀이 진리

<연중 16주일,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루가복음서 10장 38-42절 …. [38]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 [39]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42]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

* = *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사이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곧잘 저같은 설교자들이 그릇되게 해석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 일행을 대접하는 일도 소중한 일이고, 말씀을 듣는 일도 소중한데, 어느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니, 잘 조화를 이루도록 하시오.’ 이런 식으로 풀면 오류로 끌고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우리 일행이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되더라도, 나의 말을 경청하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게 하시오.’ 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 (요 6:63) 하셨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떠나, 이 낮고 천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설교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만담 만큼이나 재미있게 하는 설교. 그래서 깔깔대고 웃으면서 들을 수 있는 설교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설교는 우리의 영혼에는 무익합니다. 2) 깨달음을 주는 설교. 지식, 상식도 얻고, 정보, 지혜도 얻을 수 있는 설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영혼이 거듭나게 하는 데에는 무력합니다. 3)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히 4:12) 말씀 앞에, 죄를 통회하며, 하느님 앞에서 거듭나기를 바라 몸부림치게 하는 설교가 있습니다. 일년에 몇 번이라도 이런 설교를 듣게 하려고, 교회마다 강단(설교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위의 3)번의 설교는 궁극적으로 복음전파의 사명을 일깨우는 설교입니다. 한 때만 부글부글 끓게 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직간접적으로 복음전파의 사명을 실천하게 만드는 설교입니다.

이것은 설교자의 사명이기도 하지만, 성도들이 설교자에게만 의존하는 것보다 성도 각자가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읽고 묵상하면서, 가르침을 받는 일이 대단히 요긴합니다.

설교자의 강론만큼이나, 성도들의 간증이 교회 안에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오늘의 강단에서 말씀을 약화시키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말씀이 교회에서 살아 역사함으로써 성령께서, 잠든 영혼들을 깨워 일어서게 하시고, 복음전파의 사명에 헌신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