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조도 정과 } 사무엘상 24장 3-7절 …. [3] 사울이 길 옆에 양 우리가 많은 곳에 이르렀는데, 그 곳에 굴이 하나 있었다. 사울이 뒤를 보려고 그리로 들어갔는데, 그 굴의 안쪽 깊은 곳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숨어 있었다. [4] 다윗의 부하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드디어 주님께서 대장님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날이 왔습니다. ‘내가 너의 원수를 너의 손에 넘겨 줄 것이니, 네가 마음대로 그를 처치하여라’ 하신 바로 그 날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몰래 잘랐다. [5] 다윗은 자기가 사울의 겉옷자락만을 자른 것뿐인데도 곧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되었다. [6] 그래서 다윗은 자기 부하들에게 타일렀다. “내가 감히 손을 들어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우리의 임금님을 치겠느냐? 주님께서 내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나를 막아 주시기를 바란다. 왕은 바로 주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7] 다윗은 이런 말로 자기의 부하들을 타이르고, 그들이 일어나 사울을 치지 못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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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두어 번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었는데도 죽이지 않습니다. 그의 용한 마음을 배워야 한다고, 즉 용서하고 살아야 한다며 이 본문을 읽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으려니까, 다윗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성경에 <뒤를 보는> 지저분한 이야기까지 실리게 만든 사울의 모습이 제 자신의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의 한없는 용서가 아니면 살지 못할 존재, 이 아무개’ 가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본격적으로 보여 주신 사건도 있었습니다.
미국 노던버지니아에서 공부하던 때에, 차를 몰고 워싱턴 DC에 들어간 일이 있었습니다. 골목길에서 큰 길로 나섰는데 제가 가고 있는 역방향에서 차들이 줄지어 오고 있었습니다. 다른 차선을 보니까 저와 모두 역방향으로 오는 겁니다. 말하자면 8차선 도로가 모두 일방도로였습니다.
이걸 어쩌나 하고 당황하여 차를 세웠는데, 기적같이 앞에 오던 8차선의 차들이 모두 서는 거예요. 신호등도 없는 곳에서 말입니다. 저는 텅빈 8차선 한 복판에서 유턴을 해가지고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길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비록 찻길에서만 제가 용서받았겠습니까? 가정에서는 부모 형제들과 처자식, 손주들에게,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직장에서는 상사들과 동료직원들에게, 교회에서는 교우들에게, 그리고 제가 가는 곳마다에서 저는 한없는 용서를 받으면서 지금껏 살아온 것을 깨닫습니다. 그 용서가 아니면 제가 어떻게 살아 있겠습니까?
또 이런 일도 생각납니다. 서울 명동에 제가 가끔 들리던 ‘티롤’이라는 음악감상실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녁 한 손님이 들어왔는데 혼자 조용히 앉았더니, 갑자기 음악감상실 바닥에다 구토를 해 놓았습니다. 시큼한 술 냄새가 진동하며, 감상실은 난리가 났습니다.
제 친구 김수길은 어느새 세숫대야를 가지고 와서 두 손으로 그것을 말끔히 대야에 담아 들고 화장실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소란은 그의 동작 만큼이나 빠르게 가라앉았습니다. 그의 행동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고, 세상이 항상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도 본 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후로 60여년이 지나는 동안 저녁 전철에서, 몇 차례 구토를 해 놓은 것을 보았지만, 세숫대야가 없다는 핑계로 저는 그 친구의 본을 따르지 못하며 삽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 자신은 한껏 하나님의 용서와 이웃들의 용서 속에 살아오고 있지만, 저는 남을 용서하기 힘들어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를 용서하옵소서. 용서를 몸에 익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