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 개정판)
{ 조도 성시 } 시편 50편 14-15, 23절 …. [14] “사람이 하느님에게 바칠 제물은 감사하는 마음이요, 사람이 지킬 것은 지존하신 분에게 서원한 것을 갚는 일이다. [15]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나를 불러라. 구해 주리라. 너는 나에게 영광을 돌려라. …. [23] 감사하는 마음을 제물로 바치는 자, 나를 높이 받드는 자이니, 올바르게 사는 자에게 내가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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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예배에 나아가는 사람이 가져갈 것은 제물이나 헌금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우선이라고 하셨습니다.
“제물도 헌금도 준비했는데, 아무리 감사하려고 해도,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엇을 왜 감사하라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호소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서, 영벌을 면치 못할 처지에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구원함을 받았으니, 그 은혜를 생각하면, 무슨 일로 상심케 되었든지 간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고, 기쁨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우리들에게 많이 걱정스럽게 하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사 때문에 일희일비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들의 예배는 세상에 대해서는 강한 저항의 의미를 가집니다. “소망? 우리는 궁극적 소망이 하늘나라에 있지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진실? 진실은 하느님에게만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다시 선언하려고 우리는 예배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실망을 줄 때에는, 더욱 힘써 예배에 나아갑시다.
( 2 ) 저에게는 65년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에 동네에 있는 교회를 다니며 신문물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점차로 세상을 더 좋아해서 교회를 떠나 살았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이제 그도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랑하는 딸이 심한 병을 얻어 약 7년 간 병고 끝에 그만 친정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이별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딸의 투병과 임종까지 지켜 본 아버지로서, 진정 어렸을 적에 주일학교에서 들은 대로, 사후의 영원한 나라, 하느님의 나라에서 딸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임종직전 저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 그의 딸이 죽어가니,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기에, 간곡한 마음으로 그녀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었고, 하느님의 긍휼과 자비를 빌었습니다. 맥박을 알리는 중환자실의 계기가 7-8까지 떨어졌다가, 기도할 때에는 40-50까지 올랐었고, 기도를 마친 후에 다시 떨어져 운명하고 말았다면서, 분명코 천국에 갔음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사후 일의 결정은 하느님께서 하실 일이지, 인간이 할 일은 아니지만, ‘따님을 만나려거든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유하렸더니, 그 친구가 점심 먹자면서 찾아 왔습니다. 식탁에 앉자마자 제가 그 말을 하려고 입을 떼려는데, 그 친구가 먼저 자기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먼저 하려던 이야기는, 자기 집 근처에 내일(지난 주일인 7월 20일)부터 출석키로 작정한 교회를 보아 두었다고 했습니다.
65년 만에 그 친구가 저의 믿음의 동지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할렐루야!
<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이 세상사로 감사할 일이 있든지 없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죄와 사망에서 꺼내주신 구원의 은혜와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신 주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한 날 정한 시간에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의 예배가 힘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