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시의 클라라 기념일>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신명기 10장 17-21절 …. [17] 세상에 신도 많고 주도 많지만 너희 하느님 야훼야말로 신이시요 주이시다. 크고 힘있으시며 지엄하신 신이시요 뇌물을 받고 낯을 보아주시는 일이 없는 신이시다. [18] 고아와 과부의 인권을 세워주시고 떠도는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19] 너희도 한때는 이집트 땅에서 떠돌이 신세였으니, 너희도 또한 떠도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20] 너희 하느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그를 섬겨라. 맹세할 일이 있으면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여라. [21] 네가 찬양할 이는 그분뿐, 그가 너희 하느님이시다. 네가 본 대로 너를 위하여 그 크고 두려운 일을 해주신 하느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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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클라라(Clare of Assisi, ‘가난한 여인들의 수도회’ 설립자, 1194 ? – 1253)는 이탈리아 페루지아(Perugia, 로마의 북쪽 산악지대)의 작은 마을 아씨시의 한 부잣집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동향 출신의 이름있는 수도자 프란시스(1181 ? – 1226)의 설교를 들으면서, 클라라는 프란시스를 믿음의 아버지로 여기며, 자기도 수도자가 되려는 결심을 굳히면서 자라났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삶을 일생 살았다는 사실을 평생 깊이 묵상하면서, 무소유로 가난하게 살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 씩이나 피하기 힘든 결혼신청이 들어왔는데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그는 수도자 프란시스에게 자기를 수도자로 삼아 줄 것을 요청하자, 프란시스는 그녀를 베네딕트파 수녀회 그리고 사유재산을 유지하도록 허락하는 수녀원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이 수녀원을 찾아와 집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했지만, 그녀의 결심을 꺾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녀를 찾아왔던 여동생 아그네스가 언니의 뜻이 옳은 줄 알고 함께 수녀가 되기로 작정했고, 두 자매의 홀어머니 마저도 후일에 수녀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프란시스의 권유를 따라 세 모녀는 새로운 모델의 ‘가난한 여인들의 수도회’를 설립하여, 여성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클라라는 몇 년 사이에 이탈리아 여러 곳에 분원을 설립했고, 수녀회 규율(역사상 최초의 여성수도자 규율)을 제정하여, 보헤미아(오늘의 체코 서부 해안지방)와 독일까지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이 수녀회의 규율은 대단히 엄격해서, 수녀원 내에 사유재산을 일체 반입할 수 없었으며, 모든 증여 받은 물품은 즉시로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비로 나누었습니다. 클라라의 부친이 남긴 유산이 막대했었는데, 그녀는 이것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었습니다.
수녀들은 금식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이었는데, 이로써 클라라는 건강이 악화되어 말년에 심하게 고생했습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었는데도, 그녀는 기도, 자선, 공동체생활을 그치지 않았고, 병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형제애를 실천하고 이웃과의 화해를 이루는 일에 늘 앞장섰습니다.
그녀가 수녀회를 창설한지 40년 되던 해에, 그녀는 하느님 앞으로 갔습니다.
그의 유언 한 가지 :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십시오.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과 함께 머무르며, 그분과 함께 고난 받기를 기뻐하십시오.”
<기도> 주 예수님, 일심으로 예수님을 받든 주님의 종 클라라를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에서 지닐 수 있었던 모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다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고, 예수님을 닮아 살기 위하여 목숨을 다해 힘쓴 그녀의 삶을 저희가 조금이라도 닮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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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 어제 ‘서신 본문’을 기록하면서, 히브리서 ‘11장’인 것을 ‘12장’으로 잘못 표기했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