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은 ‘죄’와 ‘불신’의 시작

<연중 22주일,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외경 } 집회서 10장 12-15절 …. [12] 오만은 주님을 저버리는 데서 시작되고 사람의 마음이 창조주에게서 멀어질 때 생긴다. [13] 오만은 죄의 시작이므로 오만에 사로잡힌 자는 악취를 낸다. 그러므로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 엄청난 벌을 내시리며 그를 멸망시키신다. [14] 주님께서는 군주들을 그 권좌에서 몰아내시고 그 자리에 온유한 사람들을 앉히신다. [15] 주님께서는 오만한 민족을 뿌리째 뽑아내시고 그 자리에 겸손한 사람들을 심으신다.

* = * 흡사 ‘마리아의 노래’의 한 부분(룩 1: 51-53)을 읽는 느낌이지 않습니까?

오만한 자가 통치자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 그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의 염원은 예나 제나 똑같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벌을 내리시고, 권좌에서 내려뜨리시어, 멸망시킬 것을 소원합니다.

오만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질 때에 생긴다 했습니다.(위의 12절)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먼저 그를 질시하며, 사람들도 그를 ‘목불인견’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심판할 것이 아니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신에게는 그런 오만이 싹트고 있지 않는가를 자성할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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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시 } 시편 81편 13-15절 …. [13] 아, 나의 백성아, 제발 내 말을 들어다오. 이스라엘아, 나의 뜻을 따라 걸어다오. [14] 나 당장 너희 원수들을 쳐부수리라. 나 당장 너희 압제자들에게 손을 대리라. [15] 야훼의 원수들이 너희 앞에서 아첨할 것이나 그들의 운명은 돌이킬 수 없이 계속되리라.

* = * 압제자들이 하느님의 사람 앞에서 아첨을 할 것이라 했습니다.(위의 15절) 그래서 당장에는 화를 모면할는지 몰라도, 그의 운명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심판이 머지않기 때문입니다. “나 당장 너희 압제자들에게 손을 대리라.”(위의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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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히브리서 13장 3, 8, 15-16절 …. [3]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여러분도 함께 갇혀 있는 심정으로 그들을 기억하십시오. 학대받는 사람들이 있으면 여러분도 같은 학대를 받고 있는 심정으로 그들을 기억하십시오. ….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하느님의 이름을 우리의 입으로 찬양합시다. [16] 좋은 일을 하고 서로 사귀고 돕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런 것을 제물로서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 = * 1970, 80년대에 소위 ‘양심수’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군사독재에 맞서다가 구속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양심수들을 위해서 기도하자’라는 구호들을 교회에서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짧은 기간이나마 ‘교도소 선교’의 일에 직-간접으로 가담하고 있으려니까, ‘담’(교도소의 높은 담벽) 안에 사는 사람이면 모두 우리의 중보기도의 대상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바깥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든 아니든, 그들이 어떤 법규를 위반하여 얼마나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이든 관계없이,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늘 원만하기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들의 기도는 반드시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실 제물이 될 것이라고 확언하셨습니다.(위의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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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루가복음서 14장 11-14절 …. [11]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12] 예수께서 당신을 초대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사는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마라. 그렇게 하면 너도 그들의 초대를 받아서 네가 베풀어준 것을 도로 받게 될 것이다. [13]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 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14]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것이다.”

* = * 제가 어느 해 성탄절에, 제 출석교회의 교우들과 함께 지방에 있는 발달장애를 지닌 분들의 공동체를 방문하여 몇 가지 프로그램을 가지고 그들과 더불어 성탄을 경하한 일이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함께 지낸 것 가지고 말씀 드리기는 거북하지만, 참으로 의미있는 경험으로 지금껏 기억합니다.

진 바니에(Jean Vanier, 1928 – 2019)라는 스위스에서 태어난 사람은, 2차대전 때에 영국해군 장교로 복무했다가, 전후에는 신학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신학서적들에서는 어떤 소명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36세에 돌연 정신지체자 두 사람(라파엘과 필립)을 자기 집으로 들여, 함께 공동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윽고 ‘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 이라는 ‘신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동조자들에게 파급되고 파급되어, ‘라르쉬’(L’Arche, ‘방주’)공동체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현재 38개국에서 150여 개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의지할 곳이 없어, 사회 곳곳에서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던 사람들이 이 공동체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깨우치시는 방법은, ‘오만’을 싫어하는 것 -> 자신의 오만 버리기 -> 보편적 인성의 나약함 발견 -> 외면 당하는 사람들과의 일체감 -> 하느님 인식의 시작, 이런 형태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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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관념으로 겸손을 생각하지 말게 하옵소서. 인간사회 속에서 저희에게 외면 당하고 있는 이들 앞에, 그리스도의 겸손을 따르는 무리임이 실증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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