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루카 복음서 4장 17-21, 28-30절 …. [17] 누구인가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그분께 건넸다. 그분은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성령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하여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도록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사람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이 예수를 주시했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시작하셨다.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은 이 말씀을 듣고 몹시 화가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 일어나 예수를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를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했다. [30]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 *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 가셨을 때, 안식일을 맞아 회당에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으신 후, 몇 말씀 하셨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어 고향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셨기에 고향 사람들이 발끈했던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읽으신 말씀은, 메시아의 일을 예언한 대표적인 본문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읽으시고서,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 오늘 이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위의 21절)라고 하신 것입니다. 메시아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 자신에게서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아니, 저 사람은 코흘리개 시절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얌전한 마리아고, 그의 아버지 요셉도 우리가 늘 보아온 목수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뭐라고? 자기가 메시아라고? 어이가 없구만.’ 이구동성으로 코웃음을 쳤습니다. 마침내, ‘우리가 가만 있다가는, 예루살렘에 소문이 나서, 헤롯왕이 병정들을 보내어, 메시아를 사칭하는 건방진 자를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며, 나사렛 사람들을 도륙내면 어떻게 할 건가?’ 쑥덕공론을 하다가, ‘예수를 우리가 먼저 처치하는 것이 좋겠네.’ 라고 결론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항변을 하시지 않고, 몸을 피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메시아로서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쓸데없이 목숨을 내댈 이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인데, 만민의 죄를 대속하시는 제물로서의 죽음을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
{ 서신 } 테살로니카전서 4장 13-18절 …. [13] 형제 여러분, 죽은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여러분도 아셔야 합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14] 예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를 통하여 죽은 사람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가 살아남아 있다 해도 죽은 사람들보다 먼저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16] 외치는 명령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몸소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고, [17] 그 다음으로,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18]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 = * 제1세기 기독교인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의 부활이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먼저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면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나 뵌 후에,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로 옥신각신했던 모양입니다.
이 토론을 종결시키기 위해서 바울 사도께서 이 본문의 말씀을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답은 명확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죽은 사람들을 먼저 부활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주님을 뵙는 것이 먼저일 것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은 쓸데없는 상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관심할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진정 관심을 쏟아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가르친 분, 7-8세기 프랑스의 은둔수사 길레스(Giles, ? – 710경)를 소개합니다.
그는 청년기에 그리스 아테네에 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오직 하나님 만을 의지하며 수도생활로 들어갔습니다. 병자들을 돌보며, 굶주리는 이들과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중년에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와 랑그도크 지방으로 옮겨서 은둔수사생활을 계속하면서, 사슴의 젖으로 연명했다고 전합니다. 그의 치유활동은 무엇보다도 기도가 중점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도원을 세워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많은 보행불능자들을 돌보았으며, 노년에는 나환자들의 공동체를 설립하고, 그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의 기념일이 바로 오늘입니다.
~~~~~
<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이 세상 사는 날 동안, 저희에게 당부하신 일, 곧 정다운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돌보는 일에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