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에 따라 소명도 가지 각색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루가복음서 5장 4-10절 …. [4]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5]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6]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 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8]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그의 동료들과 [10] 제배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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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베드로의 직업은 갈릴리호수에서 고기를 낚던 어부였습니다. 갈릴리호수에 관한 한, 그를 능가하는 어부가 드물 정도로 전문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사렛의 목수였던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경악할 정도로 엄청난 낚시의 비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단 한 마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라는 말씀에, 베드로가 막연한 생각으로 ‘보나마나 별 것 없을 테지만, 한 번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물을 던졌더니, 평생 보지 못한 규모의 고기가 낚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일꾼을 부르시는 방식이, 이렇게 깜짝 놀랄 일을 보여줌으로써 그 엄청난 능력을 보고서 따라오게 하시는 것인가,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소명은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또 어느 한 사건으로 소명이 완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령, 베드로를 갈릴리 호숫가에서 부르신 이후, 3년간 함께 지내시면서 복음을 가르치셨고, 놀라운 이적 기사를 보여 주셨고, 십자가의 수난을 보이셨고, 스승 예수님을 세 번 씩이나 부인한 사건도 저질렀고,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고, 갈릴리 호숫가에서 세 번 씩이나 사랑의 언약을 한 끝에 “내 양을 먹이라”는 소명의 완결을 보게 됩니다.

바울의 소명은 오히려 단순했습니다. 다메섹으로 도망간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러 가던 사울에게 부활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실 때에, 사울이 묻지요.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때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이로써 사울의 방황은 끝납니다. 예수님의 사도인 바울로 변모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모세와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요나를 비롯해서, 주후 3세기 ‘사막의 교부’라는 이름의 안토니우스, ‘구원의 은혜’의 신학자 어거스틴, ‘가난한 이웃들의 영원한 친구’ 프란시스, ‘교회 개혁자’ 마틴 루터, 존 웨슬레,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 ‘하느님의 실체를 경험하지 못하고도 하느님 앞에 목숨을 바친’ 디트리히 본회퍼, 할 것 없이 모든 하느님 나라 일꾼들은 각기 부르신 시점도 다르고, 부르신 과정도, 소명의 내용도 다릅니다.

하지만, 1) 삶의 현장에서 만나 주셨다는 점, 2) 그들의 인생의 한계상황에서 만나 주셨다는 점, 3) 은혜의 체험으로 임해 주셨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봅니다.

이리하여 그들 모두는, 그들의 여생 동안, 온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섬겼고, 끝까지 충성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를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제 각기 응답하고, 또한 제 각기 헌신할 내용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저희들이 미천하기 이를 데 없지만 영광스럽게도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불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각기 쓰실 데가 있으므로 불러 주시는 줄 알고, 응답하고, 헌신하며, 여생을 복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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