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에 들떠 장담을 말자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야고보서 4장 13-17절 …. [13]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 하는 사람들이여, 들으십시오. [14]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것이고, 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을 할 것이다.” [16]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우쭐대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17]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

* = * ( 1 ) ‘백년대계’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백 년은 커녕 고작 40, 50년 일하면 늙어버리는 가련한 존재들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계획이라면, 장기계획을 해서 믿음의 후세들이 이를 물려받아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속담처럼 말하기를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해서, 오늘이 마지막 날인 듯이 살아라’ 라고 일러오고 있습니다.

( 2 ) 오늘의 서신본문은 장담하지 말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다 밑 이만리’라는 쥘 베른의 작품(1870년 작)이 있습니다. 퍽 일찍 나온 과학공상소설입니다. 개인소유의 잠수함(‘노틸러스 호’)을 타고 바다 속을 다니면서, 세상을 평정하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가진 네모 함장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세상을 못살 곳으로 만드는 식민주의자들을 향한 그의 분노를 담은 작품입니다. 결국 실패하지도 성공하지도 못하고 끝납니다. 어렸을 적에 그 작품을 읽으면서, 네모 함장이 만약 오래 살 수만 있었어도 그의 꿈이 실현될 텐데 하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의 말씀은 그런 의로운 장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기적이고 욕망에 사로잡힌 탐욕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니, 포기하라는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가령, 누가복음 12장 16절 이하에는 한 부자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풍년이 들어 창고를 늘리고, 거기에 거두어들인 수확을 잔뜩 들여놓고서 큰소리를 칩니다. “이제 몇 년 동안 실컷 먹고 잘 지내겠다.”고. 그러나 그날 밤 죽음의 사신이 그의 영혼을 데리러 왔다는 말씀입니다.

부자가 부정한 수입을 거둔 것도 아니고, 자기 밭에서 거둔 것을 가지고 잘 먹고 지내겠다는 것을 왜 하나님께서는 곱게 보아 주시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자기 배만 채우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먹을것이 떨어진 이웃도 생각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한동대학교 교훈처럼 되어 있는 ‘배워서 남 주자’라는 목표로 공부를 해서, 전세계민을 대상으로 한 ‘하나님 나라’ 라는 웅대한 계획 아래, 서로 마음을 합하고 힘을 합하여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진정 하나님께서 오래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 3 ) 구약시대의 하나님 나라의 대표적 일꾼 모세는 그의 나이 팔십이 되어서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출 7:7) 그후 그가 이집트의 왕 바로를 찾아가서 자기의 동족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였고, 열 차례의 재앙을 거쳐서 동족과 더불어 출애굽의 먼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출애굽의 먼 여정을 인도합니다. 이렇게 사명을 수행하도록 그의 수명을 120세까지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계획은 나이가 팔십이 되어서도 새로 세워도 된다고 봅니다. 강화도 온수리에서 일할 적에, 거기 양로원 ‘성안나의 집’에서 매주 한 번 씩 감사성찬례를 드리면서, 할머니들과 함께 제가 ‘구호 준비’ 라고 하면 모든 할머니들이 오른 손을 치켜들고, “인생은 팔십부터”(출 7:7)라고 외쳤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인생을 내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일찍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저희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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