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여, 주님을 경배하라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서신 } 디모테오 전서 4장 12-16절 …. [12] 젊다는 이유로 남에게 멸시를 당하지 말고 도리어 말에나 행실에나 사랑에나 믿음에나순결에 있어서 신도들의 모범이 되시오. [13] 내가 갈 때까지 성경 읽는 일과 격려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힘쓰시오. [14] 그대가 선물로 받은 거룩한 직무 곧 원로들이 그대에게 안수하며 예언해 준 말씀을 통해서 그대에게 맡겨진 직무를 등한히 하지 마시오. [15] 이 직무에 전념하고 정성을 다하시오. 그리해서 그대가 발전하고 있음을 모든 사람이 보고 알 수 있게 하시오. [16] 그대 자신을 조심하고 그대의 가르침의 내용을 잘 살피시오. 이렇게 꾸준히 일을 해 나가면 그대 자신을 구원할 뿐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모두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 유대인의 회당에서 설교를 맡는 사람들은 통상 그 고을에서 연세가 지긋한 랍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상 희랍어로 ‘프레스뷔테로스’(elder, 장로)라고 불렀습니다. 이 호칭이 주후 1세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도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디모테오 전-후서의 수신인인 디모데는 아직 30세 전후의 나이로, 설교자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울로가 디모데에게 긴히 부탁하기를, 젊은 설교자이기 때문에 멸시를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하면서, “말에나 행실에나 사랑에나 믿음에나 순결에 있어서 흠이 없을 것”을 가르쳤습니다. 모여서 예배 드리는 때만 아니라, 평소 생활할 때에도 설교자는 언행심사에 조심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일’(본문 13절)이란 우리들의 성경독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2천 년 전의 설교를 말합니다.(행 13:15, 고후 3:14, 골 4:16 참조) 그러므로 ‘성경 읽는 일에 … 힘쓰라’ 는 말은, 설교의 임무를 중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설교자가 스스로를 조심하고 또 신도들을 잘 가르치면 <자신도 구원을 받게 되고>, 신도들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 는 말씀은, 무슨 특별한 지시가 아닙니다. 구원의 도리를 똑똑히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말씀 안에서 살 테니까 구원을 받을 것이고,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도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순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성공회도 개신교입니다. 개신교라는 말은 ‘말씀 중심의 교회’라는 뜻입니다. 즉 영혼을 일깨우는 말씀(설교)이 있는 교회가 진정한 교회요, 그것이 명실공히 ‘개신교’입니다.

{ 복음 } 루가 복음서 7장 36-38절 …. [36] 예수께서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37] 마침 그 동네에는 행실이 나쁜 여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예수께서 그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신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왔다. [38]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맞추며 향유를 부어드렸다. (이하 생략)

* = * 예수님의 일행을 자기 집의 식사에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룩 7:40 이하 참조)

예수님을 초대한 시몬은 정작 예수님께서 얼마나 높으신 분인지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네에서 행실이 좋지 않다고 소문난, 돌연한 방문자인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위격을 지닌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최상의 대접을 해 드리기로 마음을 정하고, 애써 마련했던 향유를 들고 와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통회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그녀의 머리털로 발을 문질러 닦아 드리며, 향유를 부어드렸다고 했습니다.

최고의 예배를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경과 사랑과 정성을 담아 예수님을 대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는 용서받았다.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룩 7:48-50)고.

청년들이여, 2천 년 전 청년 디모데를 향한 사도 바울로의 당부를 들으십시오. 그리고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한 여인의 정성스런 예배를 보십시오. 청년기의 정성스런 예배는 일생을 좌우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값비싼 향유 병을 들고 예수님 앞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예수님의 발에 여러분의 ‘향유를 붓는’, 즉 여러분의 일생을 하느님께(예수님께) 위탁하는 예배는 있어야 합니다. 그런 엄숙한 예배가 여러분의 생애에 반드시 있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주 하느님, 이 땅의 젊은이들 위에 강복하옵소서. 저들의 일생이 값지게 하시며, 이 땅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예배다운 거룩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홀로 영광 받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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