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사가 사도 마태의 기념일>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태 복음서 9장 9-13절 …. [9]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시오.” 그러자 마태가 일어나 예수를 따랐다. [10] 예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11] 그것을 본 파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소?” [1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13] 여러분은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이다.’ 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공부하시오. 사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소.”
* = * ( 1 ) 세상에는 의로운 통치자도 있겠지만, 많은 나라들에서는 아직도 불의한 통치자들이 소위 ‘법치’를 합니다. 악한 지배자는 악법을 세워놓고, 그걸 법이라고 지키라 엄명합니다. 그리고 그 법을 어긴 사람을 ‘범법자’라 하고, 사회를 교란시켰다 하여, 크게 벌을 줍니다.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고, 총독 빌라도는 로마제국에 앞서 유다를 지배했던 분봉왕 헤롯을 통치자로 세우고, 또 유대인의 최고권력자 대제사장을 임명하여, 그들을 통하여 식민지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총독으로 헤롯왕과 유대인 대제사장에게 당부했던 것은, 1) 민중봉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수시로 민심을 살필 것, 2) 인두세와 영업세(이동인구들에 부과하는 통행세)를 규정대로 거두어서 로마제국에 납부할 것, 대체로 이 두 가지였습니다.
세관원이었던 마태는 무슨 이유에서 세관원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가능한 이유가 있었다면, 1) 다른 호구지책이 없었다, 2) 가족부양을 위해서는 제국의 앞잡이 일이라도 해야겠다, 3) 어차피 동족 중에서 누군가가 세관 일을 해야 하니, 사심없이 일을 한다면 오히려 다른 사람이 하는 것보다는 내가 나을는지 모른다, 이런 자기변명을 해가면서 뛰어든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만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에 일어오르는 갈등은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내가 뭘 못해 먹어서 이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동족인 남녀노소가 내 곁을 지날 때면, ‘매국노’, ‘흡혈귀’, ‘반역자’, 온갖 더러운 욕설을 퍼붓고 지나가는데, 정말 못 참겠다.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다지만, 이 일은 진정 내가 길을 잘못 든 거다!] 매일 똑같은 생각을 반복하지만, 별달리 결정을 짓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이면 예수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의 센터로 생각했던 곳인데, 마태는 바로 그곳 세관에서 일하고 있어서, 예수님도 마태를 알고 계셨고, 마태 역시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진지한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를 눈여겨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는 거두절미하고, “마태, 나를 따르시오.” 마태 역시, 거두절미하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날로 마태는 모든 갈등과 의문에서 헤어났습니다. 그를 정죄하던 모든 욕설을 뒤로하고, 메시아로 알려진 이 나사렛 사람, 예수의 제자로 신분이 바뀌었던 것입니다.
( 2 ) 예수님의 제자로서 마태에 관한 특기할 사항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가 마태 복음서를 기록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메모광’이었던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 그의 기억만 가지고는 그토록 풍성하게 한 복음서를 집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메모를 사용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어 있었고, 마태복음서와 루카복음서가 공동으로 사용한 자료(흔히 ‘Q자료’라고 부름)가 있었으며, 그 밖에도 마태 혼자만이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복음서를 편찬했습니다.
나중에, 신약성서 편찬자들이 성경을 편집하면서 복음서 중에 대표적인 복음서를 마태 복음서로 정하고, 신약성경 서두에 편집했던 것은, 그만큼 그의 복음서를 교회가 애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3 ) 전설에 따르면, 최초에 마태는 팔레스틴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말년에 이르러 에티오피아, 파르티나, 페르시아까지 가서 전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주후 42년, 헤롯 아그리빠의 박해가 시작되던 무렵, 그는 다른 나라로 떠나, 어느 곳에선가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도> 주 하나님, 하릴없이 날이면 날마다 동족들에게서 모멸을 당하던 마태를, 크신 자비로 새 삶을 얻게 하시고, 제자로 삼으사,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증거하는 복음서 저자로 살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비옵나니, 저희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늘 순종하여 빛의 자녀로 저희 생애를 일관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