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열흘 앞둔 우리의 기도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서신 } 로마서 8장 34-39절 …. [34] 누가 감히 그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가,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 = * 앞으로 추석이 열흘 남았습니다. 추석 준비로 몸과 마음이 바쁘시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우리가 바빠야 할 것은, 우리들의 추석 전통이 가르쳐 주듯, 별세한 가족들과 선조들의 성묘를 준비해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은 별세한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이 우선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모든 한국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 우리는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정녕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의 위협도 두려워하지 아니한 믿음의 선배들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누가 돈을 내라는 것도 아니고, 어디로 모이라는 것도 아니고, 다만 별세자들을 기억하는 우리들의 기도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목숨을 바쳐 믿음을 지킨 분들을 오늘 조용히 기억하면서, 그들의 본을 따라 살기로 기도합시다.

** 대한성공회가 기념하는 순교자들 …. [대한성공회백년사 참고] 이원창신부, 윤달용신부, 조용호신부, 이도암선교사(영국인), 홍갈로선교사(영국인), 마리아 클라라수녀(영국인)

** 한국교회가 기념하는 순교자 …. <일제강점기> 주기철목사(신사참배 거부), 양전백목사(105인사건관련, 고문사), 이기풍목사(제주도선교 중), 무명의 신사참배거부 성도들 다수. <한국전쟁기> 손양원목사(공산군에 피살), 주남선목사(공산군에 피살), 이문익장로(공산군에 피살), 박관준전도사(공산군에 피살), 서기종목사(공산군에 피살), 무명의 순교 성도들 다수(북한 및 전쟁터 전역).

<제가 아는 순교자 2인> 조희렴목사(원산남부교회, 인민군에게 피살), 배덕영목사(평양 성화신학교 교장, 아오지강제수용소).

그 밖에도 이름을 모두 수록하지 못한 수 만 명의 성직자와 일반성도 순교자들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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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요한복음서 12장 24-26절 …. [24]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25]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26] 나를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여주실 것이다.”

* = * 순교를 하고 싶다고 순교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교를 당할 각오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 박해자 앞에서도 그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때, 순교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 대로, ‘죽는 밀알’의 정신으로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많은 결실도 주시고, 때로는 순교의 영예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순교자는 아니었지만, 윌슨 칼라일(Wilson Carlile, 1847 – 1942) 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가업을 따라 젊은 시절에 영국 런던에서 상업에 종사했습니다. 하지만 1870년대에 경기불황으로 인해서 사업이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다시는 돈에 집착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평소에 그의 소원이었던 ‘실천하는 신앙’을 살아보리라는 소망을 구현하고자, 신학교에 입학해서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성공회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음악에 조예가 있어서,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 – 1899)와 생키(D. Sankey)가 대중집회 선교활동을 한창 벌이던 1880년 전후 그들을 따라 오르가니스트로 조력했습니다.

이윽고 1882년, 그는 평신도들이 참가하는 ‘교회군’(Church Army)을 조직하고, 전도와 구제활동을 실천하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활동의 주안점을 노숙자, 빈민, 병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에 두었습니다.

이것은 1878년 성공회 사제 윌리엄 부스가 ‘구세군’을 창설한 동 시대의 일이었으므로 서로 같은 정신으로 사회에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스는 성공회의 체제적 한계에 혐오를 느끼고 교단을 떠나고 말았지만, 칼라일은 성공회 내에서 체제교회와 더불어 일을 성공시키기를 소원했습니다.

교회 일은 늘 성직자가 앞장서는 것을 보아 왔던 평신도들이, 칼라일의 ‘교회군’에서는 평신도가 앞장서고 있어서 대단한 흥미를 가지고, 신도들이 가담했습니다.

칼라일은 95세 고령에 이르도록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1942년 오늘 별세하기 몇 주간 전에도 일선에 서 있었습니다.

**<영국의 윌슨 칼라일은 스콧틀랜드의 사회사상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 – 1881)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기도> 주 하나님, 저희에게 실천적 믿음을 보인 칼라일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의 신앙생활이 말씀을 듣고 그것으로 그치는, 관념적인 믿음이 되지 말고, 직-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굶주린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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