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27주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하바꾹 1장 2-4절, 2장 2-4절 …. [1:2] “야훼여,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이 소리, 언제 들어주시렵니까? 호소하는 이 억울한 일, 언제 풀어주시렵니까? [1:3] 어인 일로 이렇듯이 애매한 일을 당하게 하시고 이 고생살이를 못 본 체하십니까? 보이느니 약탈과 억압뿐이요, 터지느니 시비와 말다툼뿐입니다. [1:4] 법은 땅에 떨어지고, 정의는 끝내 무너졌습니다.” …. [2:2] 야훼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받은 말을 누구나 알아보도록 판에 새겨두어라. [2:3] 네가 본 일은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 끝날은 반드시 온다. 쉬 오지 않더라도 기다려라. 기어이 오고야 만다. [2: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 = * 이 본문을 읽고 있으면, 흡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말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바빌론에게 침략을 당해, 지도력이 있는 사람들은 다 포로로 잡혀가고, 온 나라가 피폐하여 동족들끼리도 서로 반목질시하며 살게 되었던 비극적인 상황에서, 예언자 하바꾹이 하느님 앞에 애곡하듯 외치던 탄원이었습니다. ‘하느님께 호소하는 이 소리가 들리시지도 않습니까?’ 하면서.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네가 본 일은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 … 멋대로 설치지 마라. …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하 2:3, 4)
인간이 자기 멋대로 하느님께 불평할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자기중심적이고 비겁한 인간들의 오랜 침묵과 악인의 극성이 최고조에 달했다 할지라도, ‘신실한 자’(즉 ‘믿음의 사람’)는 구원의 하느님께서 임하시는 날을 보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
{ 서신 } 디모데후서 1장 10b-12절 …. [10b] …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없애버리시고 복음을 통해서 불멸의 생명을 환하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11] 나는 이 복음을 위해서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2] 그래서 지금 나는 이런 고난(*로마 감옥에 억류 당한 것과 임박한 사형의 처벌)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어온 분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으며 또 그분이 내가 맡은 것을 그 날까지 지켜주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 = * 바울로 사도는 지금 감옥에 있고, 사형을 당할 날이 가까운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기를 바라던 바울로의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이런 확신이 생겼을까요?
그의 믿음은 추상적인 교리나 관념적인 이론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그를 신뢰하셔서 끝까지 하느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갚으실 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
{ 복음 } 루가복음서 17장 5-6절 …. [5]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니까 [6]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 = * 믿음은 ‘심령술’ 이나 ‘기합술’, 또는 ‘정신일도 하사불성’(정신을 한 곬으로 집중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 같은 정신수양을 위한 행위가 아닙니다.
믿음은 인격적인 신뢰를 말합니다. 위격(라-persona)을 지니고 계신 하느님과 인격을 지닌 인간 사이에, 서로 신뢰하는 관계를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수량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신뢰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라는 뜻으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라는 가정법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
‘믿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는 오대호의 물이 한 줄기로 흘러 떨어지는 폭포입니다. 그 강을 폭포 근처에서 공중으로 건널 수 있는 외줄을 매고, 그 위를 걷는 곡예사 블롱딘이라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심지어 수레 하나를 매달고도 건넜다고 합니다. 그가 그 외줄 위로 걷고 있을 때면, 모두가 숨을 죽이고 쳐다 보았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묻기를, ‘내가 수레에다 사람을 태우고도 건널 수가 있다고 믿습니까?’ 라고 하면, 사람들이 모두 큰 소리로 ‘예에, 물론이지요.’라고 언제나 대답했답니다. 그 곡예사가 ‘그러면 누가 수레에 앉으시겠습니까?’ 라고 물으면,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자기가 머리로 인식하는 것과, 마음으로 그리고 실천으로 신뢰하는 믿음과는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겁니다.
우리들은 하느님을 논리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신뢰하고 실천으로 의지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자연스런 믿음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 하느님, 하느님께서 구원하시고 섭리하시는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저희가 기도하며, 예배드리고, 생활합니다. 저희의 믿음이 철학이나 사색이지 않고, 마음 속의 가장 강한 신뢰요, 실천의 토대이기를 빕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