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오늘의 니느웨라면..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구약 } 요나서 3장 1-10절 …. [1] 주님께서 또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곧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둘러보는 데만 사흘 길이나 되는 아주 큰 성읍이다. [4] 요나는 그 성으로 가서 하룻길을 걸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었다. [6] 이 소문이 니느웨의 왕에게 전해 지니, 그도 임금의 의자에서 일어나, 걸치고 있던 임금의 옷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다. [7] 왕은 니느웨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하여 알렸다. “왕이 대신들과 더불어 내린 칙명을 따라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 떼든 양 떼든, 입에 아무것도 대서는 안 된다. 무엇을 먹어도 안 되고 물을 마셔도 안 된다. [8]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굵은 베 옷만을 걸치고,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어라.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 폭력을 그쳐라. [9]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10] 하나님께서 그들이 뉘우치는 것, 곧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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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니느웨라는 도시가 어떤 도시였습니까?

요나서 서두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니느웨 성)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욘 1:2) 이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 타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잔혹함으로 가득한 사회-정치적 죄악을 지칭합니다.

니느웨는 고대 아시리아제국의 수도로, 오늘날 이라크 북부 모술(Mosul) 부근에 있었습니다. 당시 아시리아는 세계 최강국이었지만, 그 강성함은 잔혹한 정복전쟁와 피비린내 나는 학살로 세워진 도시였습니다.

역사 기록(왕들의 비문 등)에 따르면, 그들은 정복한 도시의 주민을 산 채로 가죽을 벗기거나, 머리를 잘라 성문 앞에 쌓는 등의 극악무도한 행위를, 자랑하듯 기록에 남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폭력은 단지 군사적 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의 폭력문화와 억압구조로 이어졌습니다. 강자는 약자를 짓밟고, 부자들은 가난한 자를 착취했으며, 종교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 2 ) 이런 못된 도시 니느웨를 정의의 하나님께서 진멸하지 않고 두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날자까지 정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한 번의 기회를 주십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려고 하신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니느웨 같은 못된 도시는 아예 씨를 말려버리는 것이 옳다고 보았던 모양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살아날 기회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요빠 항구로 가서, 서쪽으로 멀리 다시스(*스페인)로 가는 배를 탔던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자 마음을 두신 하나님께서는 순종하지 않는 요나를, 큰 물고기를 보내시어, 종내 니느웨로 가도록 인도하십니다.(요나서 2장)

( 3 ) 니느웨 사람들은 죄도 많이 지었지만, 회개도 빨랐습니다. 요나가 하룻길을 걸으며 ‘회개하시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오.’ 라고 선포할 때에 그들이 모두 회개했다고 합니다.

요나의 말이 진정성이 있어서 그랬던가요? 니느웨 사람들이 마음 속에 이미 ‘이렇게 못되게 굴다가는 조물주께서 니느웨에 경을 치시지.’ 하며 이미 돌이킬 마음이 있었던 것인가요?

온 성의 사람들이 회개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집짐승들까지도 회개의 행색을 갖추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 떼든 양 떼든, 입에 아무것도 대서는 안 된다. 음식은 물론 물도 안 마시며, ….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굵은 베 옷만을 걸치고 … ’(욘 3:7-8)

그들의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요나는 발끈 화를 냈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깐요. 이럴까봐 내가 스페인으로 가려 했던 것입니다. 이런 몹쓸 놈들을 살려두시다니요? 정말 화가 치밉니다. 그들의 죄가 얼마나 큰데 그냥 두시다니요?’ 이렇게 펄펄 뛰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 ….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하십니다. (요나서 4장)

( 4 ) 서울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서울을 위해 마련하신 ‘예언자 요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예 쓸어버리시려고, ‘요나’를 파견하실 생각도 안 하신 것일까요?

아마도 어떤 크리스천들은 요나의 심정일는지 모르겠습니다. ‘주 하나님, 서울은 구제 받을 도시가 아닙니다. 그들의 죄로 멸망 당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런 기도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 …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서울을,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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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자비로우신 주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희의 서울을 향하신 의로운 손을 펴사, 하나님의 자비로 회개할 기회를 베푸시고 구원의 손길을 펼쳐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 정정 >> 어제 서신 본문 ‘티모테오후서 3장 17-18절’을 ‘요한1서 3장 17-18절’로 바로잡습니다. 내용은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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