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예레미야 29장 4-7절 …. [4] “나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간 모든 사람에게 말한다. [5] 너희는 거기에서 집을 짓고 살아라. 과수원을 새로 마련하고 과일을 따먹으며 살아라. [6] 장가들어 아들딸을 낳고 며느리와 사위를 삼아 손자 손녀를 보아라. 인구가 줄어서는 안 된다. 불어나야 한다. [7] 나에게 쫓겨 사로잡혀 가 사는 그 나라가 잘되도록 힘쓰며 잘되기를 나에게 빌어라. 그 나라가 잘되어야 너희도 잘될 것이다.
* = * 이즈음 세계 어느 나라가 평안하겠습니까? 모든 나라들이 염려로 가득 찼습니다. 경제가 불안하고, 국민들은 분열되고, 안보는 보장받을 길 없어 불안해 하며, 신앙인들조차 낙심합니다. 2차대전이 종식된 1945년 이래, 가장 다각도로 불안한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가장 불안한 나라들 가운데 속합니다. 그래서 입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마디씩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비관론을, 어떤 사람은 낙관론을 말합니다. 양극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느님의 말씀이, ‘비관하지 말고, 과수원을 마련하여 과일을 따먹으며, 장가들어 아들딸 낳고 며느리와 사위를 맞아 번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얼핏보면 낙관하라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오늘의 구약본문은 비관론도 아니고 낙관론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바빌론의 노예살이가 오랠 터이니, 과수원도 마련하고 아예 바빌론 주민이 되거라,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느님 앞에서 지은 죄가 크므로, 바빌론을 채찍으로 삼아, 그 벌을 받도록 조치를 한 것이니, 70년 정도는 고생해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렘 29:17-19 참고)
우리나라 역시, 이제부터 한참 고생해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 아닌가,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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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디모데후서 2장 14-15절 …. [14] 다음과 같은 것을 신도들에게 깨우쳐주시오. 말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지 말라고 하느님 앞에서 엄숙히 명령하시오. 그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듣는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15]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서 하느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시오.
* = * 우리 역사에, 원수는 문밖에까지 쳐들어왔는데 궁궐에서 나라의 대신들이, 화친할 것이냐, 대적할 것이냐를 두고 언쟁만 일삼고 있었던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들에게는, 어리석은 언쟁을 계속할 시간도 이젠 끝나가고 있지만, 아직껏 언쟁을 부추기고 있는 정객과 논객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서 언쟁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로지 신념이 있으면 신념대로 실천하는 사람 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념일 수 없는 것을 자신하며 나서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운영하고 있고, 신념을 가진 의인은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않습니까?
점차로 세상은 사탄의 논리가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저항하려는 믿음의 사람이라면, 정상적인 삶을 포기해야 하고,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권유하고 있었습니다. 말로써가 아니라, 온유함으로 섬기는 사람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일하신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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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루가 복음서 17장 12-16, 19절 …. [12]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크게 소리쳤다. [14]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 하셨다.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중 한 사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16]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 [19] 그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셨다.
* = * 치유가 구원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믿음을 완성시켜 그 믿음으로 구원에 이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비록 여전히 문제 속에 있을지라도, 그곳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할 일을 먼저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숨쉬는 것, 오늘 내 손 발을 움직여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 분명히 하느님께서 살아계시고, 오늘도 우리를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신 하느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일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읍시다.
감사를 드리러 예수님 앞에 왔던 사마리아인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자로 평생 살았을 것입니다.
~~~~~ 예레미야는 절망에서 순종의 믿음을 가져야 함을 말했습니다.
바울은 논쟁의 시대에 믿음의 사람들이 온유히 섬길 것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은혜의 자리에서 감사를 배울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 주 하느님, 하느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저희 믿음의 기본인 것을 다시 일깨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근거로, 매일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