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서신 } 로마서 4장 19-22절 …. [19] 그들(* 아브라함과 사라)은 100살 가량 되어,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사라의 모태도 죽은 것이라 여기면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믿음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굳세어져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21]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나님은 그 믿음을 공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이오.”
* = * ( 1 ) 아브라함의 믿음을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은 물론 그의 아내 사라도 그들의 나이에 임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도저히 믿을 수 없던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인격적으로 서로 신뢰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신뢰하는 사이라면, 약속을 지키려고 있는 힘을 다해서 노력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과 맺은 약속이라면, 그 약속을 끝까지 신실히 지키시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백 살이 다 되었고, 아내 사라의 몸도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여서, 인간적 판단으로는 ‘안 될 일이다’ 라고 못박을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인간 상식에 붙잡힐 분이 아니심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이런 인격적 신뢰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도 믿어 주십니다. 이런 것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성서적 표현을 씁니다.
( 2 ) 저는 한국의 근세사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국 백성을 사랑하시는지, 또 한국을 통하여 세계 속에서 이루실 일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근년에 우리나라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의심할 만한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도, 저는 의심치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반드시 세계역사를 평화의 길로, 세계교회들을 복음전파의 완결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으로 이끌어가시기 위해 한국과 한국교회를 쓰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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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교회가 오늘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 >> : 헨리 마틴 (Henry Martyn, 1781 – 1812 )
헨리 마틴은 성직자도 아니고 신학자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학생 때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신의 젊음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하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방법으로 그의 생애를 제물로 곱게 태워 하나님께 바친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복음주의 부흥운동’을 지도하고 있었던 챨스 시메온(Charles Simeon)을 만났습니다. 그에게서 “당신들은 지적 성공보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더 가치를 두어라” 라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1805년에 동인도회사의 채플린 자격으로 인도에 파송되었습니다. 그는 인도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대뜸 성경을 그들의 말로 번역하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인도는 전통적 계급사회여서, 여러가지 통제가 그의 선교활동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인도 당국은 만도에서 마리아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가령, “권세 있는 자들을 그들의 자리에서 내치시고..”(눅 1:52) 하는 부분은, 인도 사회에 결정적으로 도전하는 문구라고 여겼기 때문에 삭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헨리가 성경을 현지어로 번역하는 일에 도전하여, 우르드어(힌두스탄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하는 일, 페르시아어로 신약성경과 시편을 번역하는 일, 그리고 아랍어를 배우는 일에 첫 손을 댔습니다.
그는 건강이 허약(폐결핵)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혼구원의 사명에 자신을 혹사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몸이 다 타들어가기까지 복음의 빛을 어두운 미신의 나라들에 비추고자 혼신을 다했습니다.
1811년이 되자,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지만, 그는 오히려 쉴 생각을 하지 않고, 페르시아(당시 ‘이란’)로 들어가 성경번역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1812년 10월 19일, 31세라는 한창 나이로, 튀르키예로 향하던 여정에서 아르메니아의 토캇트라는 도시에서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의 비명의 죽음이 온 영국에 알려지면서, 많은 기독청년들의 심금을 울렸고, 선교사 헨리 마틴의 후계자들이 속출했는데, 그 중 발군의 선교사들이 데이빗 리빙스턴(아프리카 중부지방 열대밀림지역 일대에 복음을 전파함), 존 윌리암스(남태평양 군도에 복음을 전함), 로버트 모리슨(중국에 복음을 전함), 아도니람 저드슨(버마에 복음을 전함) 등이 있습니다.
그에게 결혼을 약속했던 여인(리디아 그렌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헨리가 선교사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이 리디아의 가족에 알려지면서, 강한 반대에 부딪쳐 성혼이 못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헨리는 결혼 때문에 선교사 소명을 지체할 수 없어 홀로 인도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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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 몸과 마음을 바친 헨리 마틴을 생각하며 저희의 마음이 전율합니다. 그의 신앙적 헌신의 불길이 저희 마음에도 옮겨져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저희의 나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