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지 않게 세상을 살려면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만도 1과 } 고린도전서 15장 51-58절 …. [51]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할 터인데, [52]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53]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54]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에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요, 죄의 권세는 율법입니다. [57]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58]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 = * ( 1 ) 51절에 ‘비밀’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했습니다. ‘비밀’이란 어떤 특정의 사람에게만 알게 해 준 사실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지식일 수가 없고, 그것은 하나의 비밀이 됩니다.

흔히 비밀은 ‘너만 알고 있으라’는 전제로 특정인에게만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 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그의 편지 속에서 이렇게 널리 폭로해 놓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받은 비밀을 고린도교회 교인들과 나눈 것이니 그런 트집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비밀’이라고 하는 희랍어 단어 ‘뮈스테리온’은 ‘비밀’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신비’라고도 번역합니다. 즉 인간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진리를 ‘신비’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가령,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대상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롬 11:25 참고),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 아니겠느냐?’(엡 3:4 참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의 긴밀함이 마치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와 유사한다는 것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본다’(엡 5:32),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가 알 수 있다’(골 2:20)는 등의 모든 말씀들은,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신비’ 였다고 사도 바울은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만 알려 주신 비밀이나 신비한 진리(또는 진실)가 있지 않으신지요? 만약 있으시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알려주신 비밀(신비)이니까,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또는 사도 바울처럼 교회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계시하신 비밀이라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교회로 하여금 알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

( 2 ) 53절에 보면 ‘썩지 않을 것을 입겠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에 새로운 몸, 썩지 않을 몸을 입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가 입은 몸은, 신진대사가 진행되지 않으면 몇 시간 내에 썩기 시작하는 몸입니다. 나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 후에는 썩지 않을 몸, 즉 신진대사가 필요없는 몸, 말하자면 영체(변화된 몸)를 가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영체도 체세포를 가지고 있느냐? 영체도 호흡을 하느냐? 영체도 칼로리가 필요하냐? 영체에도 오관(감각)이 있느냐? 영체를 보면 누군지 알아 볼 수 있느냐? 지상에서 지녔던 얼굴과 몸매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하늘나라에서는 어느 나이 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냐?’ 말할 수 없이 많은 질문이 던져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이 모든 질문들에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하늘나라에서 우리들이 지닐 영체가 어떤 모습일는지 알게 해 주실 필요가 있었다면, 아마 친절히 모두 일러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 3 ) 58절에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들의 통상화법으로 말한다면, ‘주님 안에서 하는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가 됩니다. 또 이것을 역으로 말해 본다면, ‘주님 안에서 하지 않는 수고는 모두 헛됩니다.’ 가 됩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바쁩니다. 은퇴한 저도 누구나처럼 은퇴한 후에 더 바쁩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바쁘냐는 겁니다. ‘주님의 일로 바쁘냐? 아니면 너의 일로 바쁘냐?’를 추궁하고 계십니다. 비록 제가 ‘주님 일로 바쁘다’ 고 말한다고 해도 주님께서 저를 향하여 ‘진정 날 위해 무엇을 했다는 말이냐?’ 고 물으신다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명목은 ‘주님의 일을 위해서’라고 해놓고,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일은 별로 진척되지 않은 채 세월을 허송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하는 일들 만이 세상을 헛 사는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

<기도> 주 하나님, 오늘도 또 다시 저희를 위하여 해를 솟게 하셨사오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날에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