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성시 } 시편 119편 35-40절 …. [35]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기쁨을 누릴 길은 이 길뿐입니다. [36]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37] 내 눈이 헛된 것을 보지 않게 해주시고, 주님의 길을 활기차게 걷게 해주십시오. [38]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맺으신 약속, 주님의 종에게 꼭 지켜 주십시오. [39] 주님의 규례는 선합니다. 내가 무서워하는 비난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40] 내가 주님의 법도를 사모합니다. 주님의 의로 내게 새 힘을 주십시오.
* = * 모세 오경의 모든 법규들은 인간을 위하여 주어진 법규들입니다. 그것을 지키고 살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모습을 갖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법규는 법규대로 있고, 죄스런 나의 눈은 헛된 것들의 진열장을 주목하고 있고, 나의 마음은 탐욕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낮에는 의인으로 사는 것 같지만, 밤이면 나는 밤거리를 누비며 죄의 일에 탐닉합니다. 이것이 ‘너와 나’의 모습인 것입니다. 마치 로버트 스티븐슨이 그의 작품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묘사하듯, “인간은 ‘하나’가 아니라, ‘진정으로 둘이다.’”라는 문장으로 고발하는 것 처럼, 대부분의 인간이 문명인과 야수성을 동시에 지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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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로마서 7장 21-25절 ….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 = * 20세기 실존철학의 한 귀퉁이를 읽는 듯한 인생론이 2천 년 전에 사도 바울의 손으로 여기에 쓰여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 실존, 즉 마음으로는 선을 희구하고 정의를 소원하지만, 죗된 인간인 나는 죄악과 불의에 붙들려 내가 하는 일이라곤 남을 해치는 일 빼고는 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결국 겉으로는 퍽 점잖은 이웃인 듯, 살고 있지만, 나의 운명은 몹시도 형사범으로 법정을 향하여 내달리고 있는, 그래서 죗값으로 형벌을 받기 위해 마냥 몸부림치는 너절한 정신병자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건짐을 받기 전에는, 우리는 아무 대책이 없는 인간임이 분명합니다.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어쩌겠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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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누가복음서 12장 57-59절 …. [57] “어찌하여 너희는 옳은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58] 너를 고소하는 사람과 함께 관원에게로 가게 되거든, 너는 도중에 그에게서 풀려나도록 힘써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저를 재판관에게로 끌고 갈 것이고, 재판관은 형무소 관리에게 넘겨주고, 형무소 관리는 너를 옥에 처넣을 것이다.[5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기 전에는, 절대로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 = * 이것은 우리 앞에 무슨 고소장이 날아들고, 형사재판을 받게 되는 일이 있으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을 것이고, 죽는 것 만큼이나 확실한 또 하나의 사실은 누구나 예외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발을 당해 형사에게 붙들려 법정으로 가게 될 때에 어떻게든 법정에 피고인으로 서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듯, ‘당신’은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십자가로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힘입어 구원을 받는 일이 긴급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하시는 피의 효험이야 말로 확실한 <죽음과 심판에 대비한> 대책입니다. 또 이것 밖에는 다른 대책이 없습니다.
2천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증거하는 사람들에게 퍼부어진 욕설은 “그따위 거짓말은 하지도 말아라”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기는 커녕, 그들을 ‘거짓말 유포자’로 박해했고, 마침내 죽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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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대속의 피를 증언하는 복음전도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세상입니다. 이 속에서 오늘도 복음을 증거하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구원받는 백성이 많아지도록, 성령님이여,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