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핀 형제의 기념일,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서신 } 로마서 8장 5-9절 …. [5] 육신을 따르는 무리는 육신에 따른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무리는 성령 안에 사는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신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7] 육신의 관심사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8] 육신에 얽매인 무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사시면, 여러분은육신에 얽매이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 = * 크리스핀(Crispin)과 크리스피녠(Crispinian)은 형제였습니다. 그들은, 주후 3세기, 지중해 연안이 모두가 로마제국의 영토였던 때에, 갈리아(오늘의 프랑스)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복음을 믿게 되었는지에 관하여는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전해지는 것은, 오늘날의 ‘텐트-메이커’ 개념의 선교사로, 형제가 모두 가죽공이었기 때문에, 밤에는 그들의 거처에서 구두나 말안장 또는 천막을 만들고, 낮에는 가두전도나, 또는 사람들을 사귀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가죽제품들은 어디서나 쉽게 팔 수 있었으므로, 그들의 생계는 별 걱정이 없었지만,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많은 제품들을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무상으로 기증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도적 전도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자선의 실천 면에서도, 노동을 통해 복음의 삶을 살아간 선교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를 대단히 경계하던 로마제국의 앞잡이들은 그들을 곱게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갈리아 지방의 총독 릭투스 바루스(Rictus Varus)는 그들을 체포, 고문하고, 로마로 압송하여 참수형을 당하게 했습니다. 그 때가 주후 287년 10월 25일이었다고 역사가들은 추정합니다. 그래서 그의 기념일을 10월 25일로 교회가 정했습니다.
주후 6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쏘아쏭 지방에 대성당을 지으면서 이들 형제의 이름을 기리며 명명되었습니다. 그들의 유품(유해)을 그곳에 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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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루카복음서 13장 6-9절 …. [6] 예수께서 이러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찾아 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7] 그래서 포도밭 지배인에게 일렀습니다. ‘여보게, 내가 3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했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밭 지배인이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나리,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라고.”
* = * ‘무화과’라는 식물은 이름이 ‘꽃이 피지 않고 맺는 열매’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꽃받침 속에 1백여 개의 꽃이 숨어서 핍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벌이나 나비의 역할로는 ‘수분’(꽃가루 받아들이기)이 되지 않고, 특정의 말벌들의 역할로써만 결실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든 결실을 하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정리해 버리자는 밭 주인의 관점은 올바른 생각입니다. 하지만, 포도밭 관리인의 어진 마음은 무화과 나무를 위해서 더 좋은 관점이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무화과 나무를 두고 하신 말씀은 ‘농법 토의’에 있지 않았던 것은 저나 여러분이 다 아는 이야기지요. 이것은 우리들의 교회를 두고 하시던 말씀이셨지요. 신앙생활을 한다면서도, 아무 전도의 결실을 얻지 못하는 성도와 교회를 두고 하신 말씀이지요.
주님도 안타까우시고, 저희도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속수무책!’이라며 탄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여기 포도밭 지배인의 말처럼, 어떻게든지 열매를 맺게 해 볼 터이니, 베어버리는 결정은 좀 미뤄달라고 비는 수 밖에 없습니다.
자, 우리가 아직 살아 있으니, 대책을 세웁시다. 말벌을 잡아다가 강제로라도 ‘수분’을 하게 해서, 결실에 이르도록 만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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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시 } 시편 24편 1-5절 …. [1] 세상과 그 안에 가득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이 주님 것이로다. [2] 그분께서 바다 위에 그것을 세우시고 강 위에 그것을 굳히신 까닭일세. [3]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4]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하고, 옳지 않은 것에 정신을 쏟지 않고,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사람이로다. [5] 그는 주님께 복을 받고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공의로움을 인정받으리라.
* = * 다시 크리스핀 형제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교회 건물이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모여 든 사람이 많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누가 와서 신학을 가르쳐 성직 안수를 주지 않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이 전도자가 되고, 자신이 ‘텐트-메이커’로 살아가면서라도, 복음전도자로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복음전도자로 살던 크리스핀 형제들의 본을 따릅시다.
박해를 받으면 어떻습니까? 어떤 화가가, 로마 감옥에서 하나의 기둥에 양쪽에 묶어놓은 크리스핀 형제를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들이 참수형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꾹 다문 입가에, 이제 몇 분이 지나면, 함께 가 있을 하늘나라의 비밀을 서로 나누는 은은한 미소가 감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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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마침내 다다르게 될 본향, 하늘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 사는 동안, 결실이 없는 무화과 나무로 살지 말게 하옵시고, 결실한 무화과 나무로 주님께 기쁨을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