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이상신 생생성경)
{ 복음 } 누가복음 13장 23-30절 …. [23] 어느 한 사람이 물었다 “주님, 구원받는 사람이 적습니까?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24] “좁은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려고 열심히 힘쓰십시오 들어가고 싶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기는 하지만 원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25] 급기야 집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꼭 닫은 다음, 밖에 서 있던 자들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며 말할 것입니다 ‘주님, 접니다 열어주십시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지 못하오’ 하는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26] 그러면 그 사람들은 ‘우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또 널찍한 장소에서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하고 말을 꺼낼 것입니다 [27] 그러나 ‘나는 당신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지 못하오 부당한 일을 하면서 산 자들은 모두 나를 떠나가시오’ 하고 말할 것입니다 [2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 안에 있고 그 사람들은 바깥에 내쫓기어 애곡을 하며 이를 갈고 있을 것입니다 [29] 동서와 남북에서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것입니다 [30] 마침내 제일 나중이었던 자가 제일 앞서게 되고 제일 먼저 시작한 자가 제일 나중이 될 것입니다”
* = * 위의 26절에서 ‘우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또 (주님은) 널찍한 장소에서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라고 하신 말씀은 흡사 교회와 교회에서 행하는 성찬식을 연상시킵니다.
수없는 설교도 들었고, 수없는 성찬식에도 참석했었는데, 왜 저를 모른다고 하십니까, 이런 말로 들리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들립니다.
성직자인 저는, 심지어, ‘제가 성경말씀을 가지고 적어도 1만 번은 설교를 했고, 제 집례로 5천 번 이상 성찬식을 거행했는데, 주님, 왜 이러십니까? 저를 모르시겠다니요?’ 그래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던가요? 이것은 누가복음 안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의 전체 문맥을 통해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회개하지 않고는 구원의 문턱에도 들 수가 없다>(눅 13:3, 5 참조)는 것이 그 하나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믿음 없이는 구원은 없다>(눅 8:12 참고)는 것이 또 하나입니다. 회개와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누가복음 전체는 전후좌우로 엮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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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로마서 8장 26-28절 …. [26] 게다가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붙들고 도우시는 영이 계십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제대로 기도할 줄 모를 때 그분의 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 신음 소리까지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며 간청하십니다 [27]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청하시므로 [성도들의]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 그야말로 영의 관심사를 잘 알아 주십니다 [28]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그분이 보이신 목적을 따라 초대 받은 자들을 도우실 때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 = * 28절 후반부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세속적인 가치, 즉 ‘금전적 수입’, ‘소원의 성취’, ‘생명을 건짐’ 같은 것들로 결과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선을 이룬다’(희, eis agaton)로 번역된 말은 본래 하나의 부사구로서, ‘잘’, 또는 ‘효과적으로’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전체 문맥을 참고하여 다시 해석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떤 악조건, 어떤 악상황에 놓여진다 하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완성으로 귀결된다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나약한 인간이므로, 우리의 기원이 어떤 일시적인 아쉬움 때문에 비는 것일 수도 있고, 삶의 방향이 어떻게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혼미한 기원을 드릴 때도 있겠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완벽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 주시고 계시므로,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기도하는 것이 옳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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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교회가 오늘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 >>
제임스 해닝턴 (James Hannington, 1847 – 1885) : 해닝턴은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나, 옥스포드에서 공부하고 성직의 길을 지망했습니다. 그는 학문연구와 안락한 생활을 바랐었지만, ‘헨리 마틴’(*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성서번역을 주업무로 하는 선교활동을 하다가, 폐결핵으로 인해서 31세로 별세한 선교사)의 전기를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고 복음전도에 강한 열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그는 27세에 사제가 되어, 8년간 잉글랜드 서부 지역에서 목회를 하다가, 영국성공회 ‘Church Missionary Society(CMS)’의 일원으로 아프리카의 우간다를 향해 떠났습니다.
해닝턴은 먼저 잔지바르를 거쳐 내륙으로 진입하려다가 말라리아와 이질로 쓰러져 1년 만에 귀국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1884년 7월 두 번째 여정을 감행했습니다. 이번에는 빅토리아 호수 북쪽 루안다루라를 통하여 우간다에 진입하려 했습니다.
당시 우간다를 다스리던 왕, 므왕가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정치적으로 위협적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을 적대시했습니다. 해닝턴이 서쪽 루트로 입국하려 하자, 므왕가는 그가 자신의 왕국을 침공하기 시작한다고 오해했습니다.
결국 1885년 10월 해닝턴은 루브가 지역에서 체포되었고, 투옥 당해, 굶주림과 고문으로 어려움을 당하다가, 그 해 10월 29일 38세의 나이로 원주민의 창에 질려 순교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기록이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흘린 피로써 우간다의 문이 열릴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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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의 어떤 역경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구원역사만 이루신다면 저희는 만족이요, 기쁨으로 여기겠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이루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