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만도 2과 } 마태복음서 17장 14-20절 …. [14] 그들이 무리에게 오니,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서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15] “주님, 내 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간질병으로 몹시 고통받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에 빠지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아이를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1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같이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18] 그리고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다. 그러자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가고, 아이는 그 순간에 나았다. [19] 그 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께 다가가서 물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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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게 겨자씨가 있습니다. 겨자씨는 깨의 50분의 일(?) 정도 됩니다. 어떤 분이 제게 겨자씨 세 개를 종이에 붙여서 코팅을 한 카드를 제게 주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껏 30년간 그것을 간수하고서 때때로 교훈을 받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는 말은 믿음의 분량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작더라도 생명이 깃든 믿음이므로 살아서 작동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고 봅니다.
결코, 제 마음 속의 ‘의지력’을 겨자씨라고 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는 것을 제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 주는 역사 속의 한 분을 소개합니다.
엘리자베스 프라이(Elizabeth Fry, 1780 – 1845)라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런던에 사는 한 부잣집의 열두 남매 가운데 다섯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열일곱 살 때에 런던의 한 퀘이커 집회에 참석했다가 설교에 감동을 받고, ‘가난하고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굳게 결심한 바가 있었습니다.
스무살이 되어, 같은 퀘이커 청년인, 작은 사업을 하고 있던 조지 프라이라는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자녀 몇을 두고 있던 때인, 그녀가 서른한 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미국의 한 여류 사회운동가와 더불어 런던의 뉴게이트교도소 여자수감동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비참한 광경에 너무도 놀랐습니다.
여죄수들이 한 방에 300명 가량 씩이나 수용되어 있었고, 남자간수들이 그들을 지키고 있었으며, 수감자의 어린 자녀들이 그들의 어머니와 더불어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의료, 교육, 복지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없었고, 수감자들은 도박, 폭력, 성적 착취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프라이 여사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오늘 교도소에서 보고 듣고 온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살면 안 되는가요?” 이렇게 밤새도록 하나님께 여쭙고 있었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교도소에서 본 사실들을 말했습니다. 같은 지구 상에서, 지옥 같은 일이 바로 그녀가 살던 런던 시내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그곳의 상황을 바꿔 놓으라고 명령하심을 또한 알렸습니다.
그녀가 조직한 최초의 기구는, 교회 여신도들, 또는 시민들이 교도소를 단체로 방문하는 ‘여성 교도소방문자협회’ 라는 조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일을 통해서, 침구와 약품을 보충하는 일, 교도소 내의 어린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일, 또 여자 수감자들을 돌보는 여자교도원을 두도록 법제화 하는 일을 벌였습니다.
그녀는 정치가도, 법조인도, 성직자도, 공무원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열한 남매의 어머니인 가정주부로서, 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긍휼과 ‘겨자씨 믿음’으로 35년 간을 쉬지 않고, 영국, 네델란드, 독일, 러시아,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 10여개국의 교도소를 방문하면서 그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일에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1) 여성 수감자에게 남성 간수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 2) 미성년자와 임산부를 보호하는 규칙, 3) 사형 남발과 잔혹한 형벌의 금지, 4) 강제 노동을 금지하는 등의 일에 기여했습니다.
교도소활동 이외에도, 노숙자를 위한 숙소 제공, 거리 어린이들에게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일, 사형수들의 시신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해부용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 정신병원과 부랑자수용소에서 인권을 보장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또한 그의 남편이 1815년 경 사업이 파산하여, 가정살림이 어렵게 되었을 때에도, 그의 가난한 살림을 쪼개어, 하시라도 굶는 사람이 와서 빵을 먹을 수 있도록, 그의 자녀들과 함께 음식을 제공하고 있었고, 특별히 출감자들이 갈 곳이 없으면, 그의 집에 한 동안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더 1세는 프라이 여사를 존경하여,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의 한 분’이라고 말했고, 출감자들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교도소의 천사’라고 그녀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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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이 겨자씨 믿음으로 저희의 생애가 일관하는 복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저희를 도구 삼으시어, 당신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