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만도 성시 } 시편 130편 1-3, 6절 [1] 야훼여, 깊은 구렁 속에서 당신을 부르오니, [2] 주여, 이 부르는 소리 들어주소서. 애원하는 이 소리, 귀 기울여 들으소서. [3] 야훼여, 당신께서 사람의 죄를 살피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리이까? …. [6]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옵니다.
{ 만도 1과 } 베드로전서 2장 9-10절 …. [9]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 [10]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하느님의 자비를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분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 만도 2과 } 마태오복음 19장 27-30절 …. [27] 그 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8]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나를 따랐으니 새 세상이 와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때에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 [29]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 배의 상을 받을 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30] 그러나 첫째였다가 꼴찌가 되고 꼴찌였다가 첫째가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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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들이 전에는 어둡고 깊은 구렁 속에 살고 있었고(시 130:1), 하느님을 모르던 백성들이었지만, 지금은 하느님의 백성이며(벧전 2:10), 뭇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왕(하느님)의 사제’이고(벧전 2:9), 장차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모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마 19:28)이라고 우리의 정체성에 관해서 (오늘의 본문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들은 희망에 가득차서 가슴이 뜁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 우리는 땅을 딛고 사는 인생이어서, ‘첫째였다가 꼴찌가 되고, 꼴찌였다가 첫째가 될 수 있는’ 차원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우리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했습니다(필 3:12-14). 마라톤 코스(약 42킬로)를 수 천 배 넘는 장거리 경주를 우리들은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요행히도 마라토너 세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에게서 마라톤 얘기를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한 분은 경기도 벽지 출신이었지만 인천에 있는 학교를 다녀서 인천 대표로 뛰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뛰는 동안에 연도에 있는 사람들이 응원을 해 주는 목소리를 들을 때에 제일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기운이 다 빠지다가도 응원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무겁던 발이 저절로 쑥쑥 올라가곤 했다고 합니다. 뛰고 있는 마라토너들을 무심코 바라보지만 말고, 응원해야겠습니다.
두 번째 만난 마라토너는 제 대학교 동문인 장종철목사(전 감신대 교수)였습니다. 그가 마라톤에 관해서 제게 들려준 말들 가운데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몇 킬로만 뛰면 벌써 경기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시작하고, 순간 순간 끊임없는 포기의 유혹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제하며, 그러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마침내 완주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만난 마라토너는 제 첫 직장에서 만난 이반교수(전 숭실대 철학과 교수, 극작가)였습니다. 그가 해 준 말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이 마라토너였던 것 처럼, 모든 마라토너들은 철학자들이다’고 했습니다. 깊고 깊은 끈질긴 사색의 뒤끝에 완주하게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마라토너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뛰느냐’는 질문에 같은 대답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도대체 내가 왜 뛰느냐”는 생각이고, 또 하나는 “왜 포기하면 안 되느냐” 는 질문이라고 했습니다. 포기할 이유가 그렇게 많답니다. 배가 아프다, 완주했다가는 틀림없이 종신 다리를 못 쓰게 될 거다, 오늘 내가 뛰는 것은 너무 무리다, 내 기록도 깨지 못할 것을 왜 뛰고 있느냐, 이런 주제들로 생각이 얽히면서 뛴다는 겁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지요. 물론 즐거운 마음으로 씩씩하게 달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험도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내 신앙생활은 별로 투철한 하느님 인식도 없이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평생 해 봤자 헛고생이다, 이렇게 신앙생활해서 궁극의 목적이 무엇을 이루려는 것이냐’, 이러면서 평생을 가는 겁니다. 자칫 했다가는 첫째가 꼴찌가 되는 경우가 이래서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믿음의 동반자들의 도움이 요긴한 것입니다. 마치 천사처럼, 우리를 돕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도움은 성령님으로부터 받는 위로와 격려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 인생 완주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마침내 구원의 문으로 영생의 문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의 신앙 마라톤을 완주하십시다.
<기도> 주 하느님, 고독하고 힘든 믿음의 인생경주를 완주하게 하옵소서. 성령님의 권고 속에서 매일 감사함으로 힘을 얻으며, 특별히 우리를 낙오하도록 꼬이는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고, 주님과 함께 큰 기쁨 속에 승리의 환호를 올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