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구약 } 이사야서 52장 7-10절 …. [7]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 [8]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의 소리를 들어 보아라. 그들이 소리를 높여서, 기뻐하며 외친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오시는 그 모습을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9] 너희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속량하셨다. [10] 주님께서 모든 이방 나라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하신 능력을 드러내시니,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 서신 } 로마서 10장 13-17절 …. [13]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한 것과 같습니다.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주님, 우리가 전하는 소식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 = * 기쁜 소식을 들으려고 우체국이 있어서, 우리는 편지를 기다리며 기쁜 소식을 기다리고, 또 신문사와 방송국이 있어서, 날마다 기쁜 소식을 보고 듣기를 기다립니다.
세상에 많은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들어온 기쁜 소식 가운데 가장 기쁜 소식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성육신’(Incarnation,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인간세상에 오심)의 소식, 곧 ‘성탄’의 소식이었고,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전도자들이 날마다 불철주야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구속(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음)의 은혜에 감사하는 정도가 깊은 사람이면 깊은 사람일수록 전도의 열정이 강렬합니다. 그들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했으며, 재산을 다 바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증언했습니다.
바울이 그랬고, 폴리캅과 어거스틴, 프란시스, 시에나의 카타리나가 그랬고, 존 위클리프, 마틴 루터, 존 칼빈, 쯔빙글리, 근대에 이르러 수많은 대각성 운동의 지도자들이 모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교회로 교회 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의 생명과 가진 것을 다 바쳐 봉사했습니다.
왭니까?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외아들을 내놓기까지 하셨는데, 그 은혜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목숨도 아깝지 않고, 재산도 아깝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이들의) 말씀에서 비롯된다”(롬 10:17)는 전도자들의 신앙이 그들을 그토록 역동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메콩강 하류에 있는 메콩델타에서 그곳 무수한 수상 마을에 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반생을 보냈습니다. 그후 베트남 북부지방의 산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족을 두고 떠났다가, 그만 코로나팬데믹으로 숨져간 고 터이따이 목사님이 간절하게 생각납니다. 그렇게 복음의 열정이 불타듯했던 사람이었는데..
~~~~~
{ 복음 } 마태복음서 4장 18-22절 …. [18]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걸어가시다가, 두 형제,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와 형제간인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는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겠다.”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21] 거기에서 조금 더 가시다가, 예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 = * 교회력으로 신년에 들어 가장 먼저 만나는 기념일이 사도 안드레의 기념일입니다. 안드레는 ‘전도자’의 성격이 강한 사도였습니다. 그는, 으뜸사도이며 그의 친형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사도였습니다. 낚시로 말하자면, ‘대어’를 한 건 한 셈이었지요. 하지만 안드레가 자기 형 시몬이 그렇게 큰 ‘대어’가 될 줄은 미처 모르고 한 일이었습니다.(요 1:40-42)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낚시질’이 안드레 못지않은 ‘월척’을 하기를 기대하고, 다시 한 번 심기를 새롭게 하여 전도에 박차를 가합시다.
~~~~~
<<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 >>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1858 -1916) : 그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 양육되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군인이 되어, 방탕한 생활과 자기중심적 태도로 기독교신앙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가 북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중 이슬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진지함과 경건함을 보면서, 그의 무신론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파리로 돌아와 수도자들을 만나 보면서, 그는 깊은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규율이 엄격한 트라피스트수도회에 들어가 철저한 순종과 노동의 삶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새로운 비전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세 표어 곧 “예수님 처럼 낮아지자”,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복음을 전하자”, “말로써가 아니고 사랑의 삶으로 믿음을 가르치자”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나사렛으로 가서, 거기서 기거하며 은둔수도자로서의 생활을 30년간 했습니다.
그후, 그는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 그곳의 투아레그족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영적 지도자로 15년간 살았습니다. 그동안 그는 투아레그어를 연구하여 그들 언어의 사전을 편찬하였으며, 그들의 문집과 투아레그어 문법을 펴냈습니다.
1차대전 중 혼란 속에서 그는 강도들에게 총격을 당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록 그의 생시에는 그를 추종하는 이가 없었지만,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의 선교활동과 죽음이 유럽에 알려지면서 그의 선교활동을 이어가려는 일꾼들이 다수 일어나게 되어, ‘예수의 다수형제회’, ‘예수의 작은 자매회’, 그 밖에 20여 개의 영성공동체가 탄생했습니다.
~~~~~
<기도> 주 하나님, 저희에게 소망을 두시고 대림절로 시작하는 새 해를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희 선대의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아 저희도 복음의 증거자로 사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가지게 하시고, 그 열정이 저희 삶을 이끌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