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하는 사람이 하늘나라 백성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성시 } 시편 118편 22-26절 …. [22]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23]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이니, 우리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 아니랴? [24] 이 날은 주님이 구별해 주신 날, 우리 모두 이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25]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형통하게 해주십시오. [26]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에게는 복이 있다. 주님의 집에서 우리가 너희를 축복하였다.

* = * ( 1 ) 시편 본문 22절에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는 말씀은 본래, 이스라엘에 침략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한 일을 두고 읊은 시였지만,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예언한 말씀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더라면 십자가를 메워 골고다로 끌고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끌려가신 예수님께서는 만민의 죄를 대속하시고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초석이 되셨습니다.

( 2 ) 시편 본문 25절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원문은 ‘호쉬아 나’ 인데, 이것을 희랍어로 표기할 때에는, 우리들이 잘 아는 ‘호산나’ 가 됩니다. 또 26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에게는 복이 있다” 라고 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의 장면에서, 네 가지 복음서가 모두 기록한, 무리들의 환호소리였습니다.(마 21:9, 막 11:9, 눅 19:38, 요12:13)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던 사람들이 결코 소수가 아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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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태복음 7장 21-27절 …. [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 [24]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5]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26]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27]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니,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났다.”

* = * ( 1 ) <21-23절> : ‘주님, 주님’ 하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주님과 더불어 일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들이 모두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왜요? 필요하면 마치 하나님을 믿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도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원천에서도 능력을 나타낼 수도 있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 2 ) <24-27절> : 무엇이 온전한 믿음이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이를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왜 마음으로 믿는데, 몸으로 실천이 되지 않는 것일까요? 먼저는 ‘믿는다‘는 말 자체가 석연치 않으며, 마음으로 잠시 믿는 것 같다가도, 그 일로 시련을 당하고, 불편한 일이 생길 때에는 쉽게 믿음을 포기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그리스도적인 세력이 예루살렘에서 로마총독과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팽창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면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떨어져나간 것을 우리는 압니다.(요 6:66이하 참고)

하나님의 말씀은 관념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복음이지만,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실제를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머리로 이해가 된다고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되며, 실제의 삶에서 실증을 얻고 나서야, 우리 자신의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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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 >> : 니콜라스 페라

니콜라스 페라(Nicholas Ferrar, 1592 – 1637) 는 런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13세에 이미 경건한 신앙생활과 천재적 두뇌를 인정받아 케임브리지에 입학해서 고전학, 신학, 철학에 심취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허약하여, 심신이 조용한 생활을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33세에 모든 꿈을 내려놓고, 작은 마을에 머물며 ‘리틀 기딩’(Little Gidding)이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일, 시편 독서, 금욕, 공동체적 나눔, 병든 이웃들을 돌보는 일, 가난한 자 구제,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성서필사와 성서연구, 예배중심의 생활이었습니다.

당시의 영국은 내전과 신앙적 갈등으로 혼란한 시기였지만, 페라의 ‘말씀과 기도’ 중심의 생활이 영국국교회(성공회)에 새로운 기풍을 일으키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말씀묵상에서 그치지 않고,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는 열정을 가지도록 감복시켰습니다. 그가 45세가 되던 1637년, 오늘(12월 4일) 청교도 혁명의 소란한 소리를 들으면서 별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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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조용한 말씀의 실천으로 믿음생활의 보람을 찾게 해 준 나콜라스 페라를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저희들을 소란스럽게 하는 모든 사회적 분열과 신앙적 균열 속에서, 말씀을 몸으로 익히는 생활을 하도록 성령을 통하여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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