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은 세상의 평화꾼

<대림2주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이사야 11장 1, 4-9절 …. [1]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 [4]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정당하게 해주고, 흙에 묻혀 사는 천민의 시비를 바로 가려주리라. 그의 말은 몽치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의 입김은 무도한 자를 죽이리라. [5]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이고, 성실로 띠를 띠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8] 젖먹이가 살무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 = * ( 1 ) <1 – 5절> :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세상은 평화를 바라지만, 평화의 열쇠, 평화의 길을 알려 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평화의 열쇠는 인류가 하느님께 돌아와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등지고 살던 인류가 하느님 앞에 회개하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게 되면, 이 세상에는 평화가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로써 인류의 모든 죄가 사함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을 힘입어, 누구든지 속죄함을 믿고 간구하면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거부하고 있으니까, 세상은 아직도 싸움과 갈등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 2 ) <6 – 9절> : 이 본문을 읽고 있으면, 인상파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 – 1910)의 그림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기 전의 세계를 그린 듯합니다. ‘약육강식의 폭력적 풍경’은 볼래야 볼 수 없는 에덴의 자연계, 그 평화의 세계를 그의 그림에 담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신학자가 아니고 화가입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으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그 옛날 유다인 예언자들이 전한 <메시아 통치> 에서 보는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그 평화의 비전을 포기하지 말 것을 온 인류에게 종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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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로마서 15장 4, 7-9a, 13절 [4] 성서말씀은 모두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서에서 인내를 배우고 격려를 받아서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여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8]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진실성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할례받은 사람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고 [9] 이방인들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 [13] 아무쪼록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온갖 즐거움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가득히 안겨 주시고 성령의 힘으로 희망이 여러분에게 넘쳐 흐르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 = * ( 1 )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할례의 전통을 지닌 유다인의 한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유다인도 이방인도 다 하느님을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본문 7절)

그리고 그들의 ‘종’(위의 본문 8절)이 되시고, 심지어 ‘죄인’의 모습이 되시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종’과 ‘죄인’까지 되시면서도 이 세상에는 평화를 주시고 가셨습니다.(위의 본문 13절)

( 2 )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한 분인 삐에르 신부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와서 하는 말이 “신부님, 전 이제 더 이상 살래야 살 기력이 없습니다. 가정은 깨어졌고, 사업은 망했고, 세상은 나를 모두 외면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절망상태인 구체적인 증거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삐에르 신부님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듣고 보니, 정말 충분히 자살할 이유가 있으시군요. 그러면 죽으십시오. 다만, 죽기 전에 나를 조금만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청년은 “뭘 도와 드릴까요?” “기왕 죽을 건데, 제 일을 좀 도와 주고 죽어도 되지 않습니까?”

하더니, 노숙자들에게 담요를 나눠주는 일,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의 허물어진 지붕을 고쳐주고, 배고픈 아이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는 일을 좀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신부님과 함께 이 일에 동원되어 바쁘게 일했습니다. 어깨에 땀이 배고, 손에 상처가 났지만, 그의 눈빛에는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신부님과 노숙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싸움 많은 이 세상도 평화의 세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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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태오 복음서 3장 1-2a, 5-6, 7b-8, 10-11절 …. [1]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 하고 선포하였다. …. [5] 그 때에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유다 각 지방과 요르단 강 부근의 사람들이 다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서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다. … [7b]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그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8]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서 보여라. …. [10]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그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 = * 평화의 왕이신 우리 주님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자 요한 역시 그가 전하던 메시지가 “회개하라” 였습니다.(위의 본문 2절) 회개하면 하느님과 화해할 길이 열리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회개하는 사람이라면, 이제 <정의>의 편에서 살 수 있고, <인권>을 짓밟히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 존재의 존엄함을 회복시켜 주는 일에 앞장설 수 있을 뿐더러, <경제적 평화>, <환경 보존> 같은 근원적 평화의 일을 위해 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우리 교회들의 21세기 평화운동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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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이 싸움과 다툼의 인류 역사 속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평화의 왕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저희 성도들이 이 세계 속에 평화를 심는 자들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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