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일 지나고 대뜸 박해의 칼날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구약 } 역대기(하) 24장 20-22절 …. [20] 그때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리아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내려 백성 앞에 나서서 말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여호와의 계명을 거역하느냐? 그렇게 해서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나를 저버렸으니 나도 너희를 저버렸다.’ 라고 할 것이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해코지할 음모를 꾸며 끝내 왕의 명령에 따라 성전 뜰에서즈카리아를 돌로 쳐 죽였다. [22] 요아스 왕은 즈카리아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그렇게 죽였다. 즈카리아는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님께서 보시고 갚으실 것이다.”

{ 서신차용 } 사도행전 7장 51-60절 …. [51]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치르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과 똑같습니다. [52] 예언자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으로부터 박해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의 조상은 공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공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 [53] 여러분은 천사들의 지시에 따라 율법을 받고서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54] 군중은 그 말을 듣고 분노가 치밀어 스테파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했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시오. 하늘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57] 군중은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어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 스테파노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 주소서.” [60]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외쳤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소서.” 스테파노는 이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 복음 } 마테오 복음서 23장 34-39절 …. [34] 그러므로 이제 내가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율법학자들을 여러분에게 보내리니, 그러면 여러분은 그들을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여러분의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또 이 고을과 저 고을을 쫓아다니며 박해할 것이오. [35] 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여러분이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바라키야의 아들 즈카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여러분에게 돌아갈 것이오. [36]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노니,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세대에 닥칠 것이오.”

[37]“예루살렘이여! 예루살렘이여!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는 그대여!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그대의 자녀를 모으려 했소? 그러나 여러분은 마다했소. [38] 보시오. 그대의 집은 버려져 황폐해질 것이오. [39]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노니, 여러분이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도다’ 고 말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시 보지 못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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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예수님의 탄일을 지내고, 하룻 밤을 지나면서 우리는 대뜸 기독교 첫 순교자 스테파노의 기념일을 맞습니다. 축일 가운데도 대축일인 예수님의 성탄일을 지내자마자 왜 하필이면 스테파노의 순교일을 그 다음 날로 작정했느냐고 물을 만합니다.

그런데 교회력을 보면 12월 26일은 스테파노의 순교일, 12월 28일은 베들레헴 인근에 살던 천진난만한 아기들의 떼죽음 기념일, 12월 29일은 캔터베리대성당에서 무참히 살해 당한, 일명 ‘토마스 베케트’ 라고도 칭하는 토마스 주교의 기념일, 12월 31일은 종교개혁기에 성경번역을 한 죄로, 죽은 지 30년이 지난 유골을 파내어 화형에 처해진 존 위클리프의 기념일입니다.

하필 성탄일 다음 날부터 날이면 날마다 기억해야 할 순교자들과 목숨을 걸고 복음을 증거했던 이들의 치명을 기념하는 날들로 엮어져 있단 말입니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 일부러 이렇게 일정을 잡았겠습니까?

기독교 2천 년 세월에, 복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유명 무명의 선배 성도들의 수를 줄여잡아 도합 1백 만 명으로 가상한다면, 그 분들이 365일 가운데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할 때, 하루에 약 3천 명이 순교하신 셈이 됩니다.

( 2 ) 복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는 것임)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박해의 대상이 되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박해의 대상 가운데 가장 중심에 계신 분이 예수님이시니까요.

그러니까,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박해를 당하실 것으로 어느 누구 보다 잘 예상하고 계셨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는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죽음을 당하실 뻔하셨습니다. 나사렛 회당에서(눅 4:28-30), 성전에서 돌로 맞을 뻔했고(요8:59, 10:31-33), 성전정화 사건 이후에(막 11:18), 바리새인들이 죽이기로 뜻을 모으고(마 12:14), 유월절 전에 죽이기로 작정하고(막 14:1-2), 이렇게 오 륙 차례 씩이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왜 살해의 위협이 더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복음 전파하실 일과, 제자 양육의 일이 어느 단계에 이를 때까지는,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은, 공생애까지 약 33년을 경과하고 나서 골고다로 오르셨던 것입니다.

( 3 ) 어떤 사람들이 박해를 당하게 됩니까? 기독교, 교회, 복음전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활동, 이런 것들이 자기의 기득권에 침해를 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죽였습니다.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이 세상 법으로 합법인 경우도 있었지만, 박해 자체가 불법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 어떤 사회건 기독교인들은 박해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주로, 박해는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할 때에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박해는 거의 있을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박해가 가장 혹독했던 로마제국 치하에서의 경우를 보면,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박해의 이유였습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경건하고, 자비가 넘치고, 성결하고, 진실했던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의 모습에 반해서, 어느 날 조용히 와서 물었을 것입니다.

“당신 처럼 살고 싶은데,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조용히 대답했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순교를 당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목숨을 걸고서도 복음 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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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하나님의 구원이 복음전파로 성취될 것을 믿습니다. 저희가 기회를 얻든 못 얻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무슨 방법으로든 복음이 땅끝까지 퍼지는 일에 도움이 되도록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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