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사가, 사도 요한 기념일, 말씀 묵상> ……… (공동번역)
{ 서신 } 요한 1서 1장 1-4절 …. [1]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났을 때에 우리는 그 생명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증언합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이 글을 써 보냅니다.
{ 복음 } 요한 복음서 21장 19하-22, 24절 …. [19] … 이 말씀을 하신 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20] 베드로가 돌아다보았더니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의 옆 자리에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 넘길 자가 누굽니까?” 하고 묻던 제자였다. [21]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주님,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22] 예수께서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 [24] 그 제자는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글로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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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예수님의 사도요, 전도자요, 신학자였던 요한은 본래 갈릴리의 어부였습니다. 아버지는 제베대오, 어머니는 살로메였는데, 살로메는 예수님 일행을 많이 도왔던 신실한 초기기독교 신자였습니다.(막 15:40-41, 16:1) 요한은 그의 형 야고보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바 되어 고기잡는 그물을 깁던 현장에서 그물을 버려두고 그 날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막 1:19-20)
그 형제는 예수님께서 친히 지어주신 ‘우레의 아들’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혈기 때문에 붙여주신 별명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그들의 열심이 다른 제자들보다 현저해서 베드로와 함께 수석제자 세 사람으로 꼽히고 있었습니다.(막 5:37, 9:2, 14:33)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던 요한은, 모든 제자들이 도망간 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곁에 끝까지 남아 있으면서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자기에게 맡기시던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듣는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요 19:27)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의 무덤에 먼저 달려가서 빈 무덤을 확인했었고(요 20:4-5), 디베랴 바다에서 다른 제자들과 더불어 낚시질을 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이기도 했습니다.(요 21:7)
주님의 부활-승천 후, 요한은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중진 가운데 한 사람으로(갈 2:9)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돌보던 사역을 맡고 있었지만, 그후로는 파트모스 섬에서 여생을 보내게 될 때까지(묵 1:9), 어떻게 요한복음서와 그의 서신들을 작성했는지에 관해서는 그리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그가 저술한 요한복음서에서 그가 전한 증언의 중점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면서, 그의 생애의 말년을 상상할 뿐입니다.
가.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 : 이것은 한밤중에 예수님 일행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라는 백성의 지도자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었는데, 곁에서 요한이 듣고서, 나중에 복음서에 수록한 내용입니다. 율법의 준수로나 수도생활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만 거듭날 수가 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메마른 형식주의에 매여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는 주장이었습니다.<요 3:1-21) 여기서, 신구약 전체를 요약하는 성구를 우리는 찾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나. <실천하는 사랑이 예수님의 가장 으뜸되는 교훈이다> :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빌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리라”(요 13:35)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특기했습니다. 말하자면,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인식할 만큼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실로 요한이 예수님의 삶을 가장 측근에서 관찰하면서, ‘사랑을 위하여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셨다’ 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다. <예전적 성찬례보다 행위로서의 ‘세족의 삶’을 무겁게 보았다> :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모두 예전으로서의 성만찬을 비중있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요한복음은 성만찬 기록을 상세히 남기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요 13:1-20) 마치 성찬례보다 세족례가 중요했던 것 처럼 세족례만 남겨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요한이 초대교회에서 성찬례를 예식화하는 경향에 대해서 경계하는 입장인 듯이 보입니다. 오히려 ‘실천적 용서’, ‘실천적 사랑’을 강조하려 했던 요한의 의지를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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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주님의 사랑을 받던 사도 요한을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그가 예수님의 공생애를 함께 동행하며, 메시아 체험을 복음서로 우리들에게 나누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의 증언을 통하여 우리들도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주님을 경험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