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서신 } 요한1서 4장 11-18절 ….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14]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1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
* = * ( 1 ) 논리학 기초를 다시 복습합니다. ‘A는 B다’가 성립할 때 ‘B는 A다’가 성립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가령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날이다”를 뒤집어서,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날은 부활절이다” 해도 맞습니다.
하지만, 다른 문장, 곧 “내 집은 역세권에 있다”가 맞다고 해서 “역세권에 있는 것은 내 집이다”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역세권에 있는 집’이 세상에 수백 만 개가 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오늘의 본문 16절)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맞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라는 명제 하나를 가지고, 휴머니즘과 기독교를 동일시하려는 사람들이 세상에 참 많습니다.
미안하지만, 기독교가 때때로 휴머니즘과 유사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휴머니즘과 기독교는 궤를 전혀 달리합니다. 휴머니즘이 인류의 공존-공영을 꾀하는 하나의 이념이라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된 <신앙>입니다. 이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 2 ) 그래도, “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 계시네”라는 찬송을 부르거나 들을 때면 우리는 깊이 감동합니다. 왭니까? 그 노래 속에 ‘사랑’이라는 말과 ‘주님’이라는 말의 조합이, 대뜸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그 보혈이 우리 눈 앞에 어른거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감동이 우리를 회개하고 신앙생활에 입문하게 했고, 우리들의 직업을 바꾸게 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내 직업이 되어 일생을 살게 했고, 내 삶을 통하여 사랑 속에서 사랑을 위하여 살았고, 그 사랑의 열매들이 나에게 삶의 보람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열매들을 바라볼 때면, 인간의 땀과 눈물보다, 그에 훨씬 앞서 흘리고 가신 주님의 땀과 눈물과 핏방울이 더 강렬하고 투명하게 우리 눈에 보입니다.
사랑이 절실한 곳이면 나사렛과 갈릴리로, 겐네사렛으로, 두로와 시돈으로, 사마리아로, 심지어 예루살렘으로 가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빛의 자녀들도 오늘 사랑이 절실한 곳으로 서슴없이 달려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 2천 년 역사였습니다.
( 3 ) ‘사랑 = 하나님’은 틀린 공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 사랑’은 우리의 믿음의 핵심입니다.(요일 4:8, 16)
인간의 사랑은 아무리 위대해 보여도 위대할 수가 없습니다. 만민을 대속하시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상사람들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에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팔을 펴시고, 못을 박도록 허락하신 그 사랑 만이 위대하신 사랑입니다. 그 위대한 사랑이 우리를 껴안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은 실천하되, 우리의 사랑이 언제나 사람들을 이끌어 복음 안에 살게 만들 수 있다고 믿기는 힘듭니다. 인간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으로 만나서 자아가 깨어질 때까지는, 아무런 변화를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
<기도> 주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올립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힘입은 저희가 세상의 작은 자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이로써 날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깊이 깨달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