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찼다’는 오늘의 의미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르코 복음서 1장 14-20절 ….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15] “때가 차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

[16]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시다,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소.”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나섰다. [19] 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와 삯꾼들을 함께 배에 남겨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

* = * ( 1 ) 위의 본문 15절 서두에 “때(희랍어, ‘카이로스’)가 차서”라는 어구가 있습니다. 때를 누가 재고 있었을까요? 우리들의 시계로 잰 시간(희랍어, ‘크로노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측정하시는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계로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문맥을 보면, 세례 요한이 체포되었기 때문에 ‘때가 이르렀다’고 말하는 것 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건 아니었습니다. 이미 때는 찼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체포된 사건은, ‘때가 차고 말았던’ 하나의 뚜렷한 증거로 나타난 일이었을 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때가 차기’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인간은 변화되지 않았고, 율법도 주셨지만 인간을 구원하기에는 율법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번번이 인류는 하나님의 때를 놓쳤고,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때를 연기하셨지만, 결과는 더욱 나빠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눈물의 결단’을 내리시곤 했습니다.

노아 때에 그랬고, 소돔 고모라 때에 그랬고, 애굽에서 바로에게도 그랬고, 남북 왕조(유다와 이스라엘)이 모두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기다리실 아무런 희망을 못 가지시곤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은 무엇일까요? 불법이 성하고,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 하며, 사랑이 식어가고, 신앙공동체마저 의식이 해이해져가는 이 혼란한 시대에서, 우리들의 시계가 틀린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시계로는 아직 ‘때가 차오르기에는’ 한참 먼 것일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 수차례 ‘때의 한계’를 수정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 2 ) 2천 년 전,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로 생업을 삼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겠는데, 형제가 함께 동업하던 사람들이 시몬-안드레아 형제, 야고보-요한 형제 뿐이었던가요?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던 바로 그 날에 호숫가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들이 바로 그 두 쌍의 형제들 뿐이었을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일찍이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날들을 아셨고, 그 지점까지 알고 계셔서, 그 두 쌍의 형제들을 제자로 삼을 수 있었단 말입니까?

이 모든 의문들이 다 맞을 수도 있고 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되었건, 우리들도 그 어느 날, 우리 영혼에 성령을 통하여 부르심의 사인을 보여 주시고,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라고 믿어지는 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줄곧 부르고 계십니다.

저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열여덟 살, 신학교 입학원서를 쓰기 전날도 아니었고, 성경독서와 경건생활을 힘쓰고 있을 때도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영적으로 저 자신이 매우 흐느적거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교회에서 사귀던 친구들도 ‘이제는 저 친구 교회에서 마음이 아주 떠났구나’ 하던 때였습니다.

그때에 강한 터치로 하나님께서 제 마음 문을 노크하고 계셨습니다. 문이 부서지게 두드리고 계셨습니다. 그 친절하신 노크소리에 저는 고개를 쳐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심취하기 시작했으며, 교회문을 다시 두드리게 되었고, 교회 종까지 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

<기도> 주 하나님, 오늘 저희 삶의 상황을 둘러보면, 하나님의 때가 이미 찰 때로 차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때만 연기되고 있을 뿐임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 저희를 용서하옵소서. 임박한 하나님의 채찍을 두려워하게 하시며,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케 하옵소서. 또한 지금이 복음을 전해야 할 때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