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현 후 3주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이사야 8장 22절 – 9장 2절 …. [8:22] 땅을 굽어보나 보이는 것은 고통과 암흑, 답답한 어둠 뿐, 마침내 그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가리라. [8:23] 고통에 잠긴 곳이 어찌 캄캄하지 않으랴? [9:1] 전에는 그가 즈불룬 땅과 납달리 땅을 천대하셨으나 장차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강 건너편 외국인들의 지역을 귀하게 여기실 날이 오리라. [9:2]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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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1950년 12월 24일 성탄일 전날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가, 다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은 후퇴를 거듭했고, 수많은 피난민들이 대구 부산 지역으로 몰리고 있었습니다.
대구의 ‘모’교회는 성탄을 맞이하여 그 고장 어린이들을 비롯해서 피난민 어린이들을 초대하여, 끔찍하고 우울한 전시하에서라도 성탄일 만큼은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노래와 연극의 밤을 준비했습니다.
많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이 밤에 모여든 사람들은 마치 콩나물 시루를 방불케 했습니다. 한창 순서가 진행되는 가운데 발코니 석에서 누군가가 ‘불이야’ 하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정전이 되었습니다.
청중들, 특별히 어린이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발코니 석에 있던 아이들이 뒷켠에서부터 모두 아랫쪽으로 밀리우더니, 발코니 선단에 있던 아이들부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아랫층을 향해 뛰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층 윗층의 사람들이 모두 아우성치는 소리와 함께 한참동안, 목숨을 살리려면 뛰어내려야 한다는 오판에 그만 졸지에 사람 위에 사람이 뛰어내리고, 떨어진 아이들이 몸을 미처 가누지 못한 위에 또 다른 어린이가 떨어지고 해서, 한참 후 소요가 가라앉고 불을 켰을 때에는 그야말로 ‘목불인견’, 눈 뜨고 볼 수 없는 정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날 목숨을 잃은 어린이 숫자만 42명으로 계수되어 있습니다.
후일 그 교회가 남긴 기록에는 “좌익분자에 의한 소동” 이었다고 하는데, 상세한 경위는 더 이상 알 수도 없고 밝힐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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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시 } 시편 27편 1, 6-7절 …. [1] 야훼께서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야훼께서 내 생명의 피난처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오. …. [6] 에워싼 저 원수들을 내려다보며 그 장막에서 제물 바치고 환성 올리고 노래하며 야훼께 찬양하리라. [7] 야훼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소서. 불쌍히 여기시어 대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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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 ) 어둠을 좋아하는 자들을 ‘어둠의 자식’ 이라 합니다. 그들이 악을 행하기는 빛보다 어둠 속에서 더 수월하기 때문이겠지요.
1950년대 자유당 시절에 정치모리배들이 온갖 불법한 일을 어둠 속에서 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선거 개표장에서 불을 꺼놓고, 각 종 불법개표를 자행했고, 그 결과로 자유당이 재집권했습니다.
그 불의한 처사를 당했던 세대들은, 선거과정에서 개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세대가 이제는 태반 저 세상으로 갔기 때문에, 개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 만이 허둥지둥하고 있음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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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태오 복음서 4장 12-17절 …. [12]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13] 그러나 나자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15]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 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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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 ) 결국 빛이 있는 곳에 진리가 있고, 정의와 생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사회가 지니는 빛이란, 학문의 자유,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자유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자유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게 하는 언론의 자유입니다.
우리나라가 언론의 자유가 가장 만개했던 때가 군사정권이 민정으로 바뀌던 시절이었다고 봅니다. 그후로 점차 다시 언론은 노조의 횡포 아래에 굽혀들었고, 금시에 자유 언론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오, 언론의 자유여, 다시 우리에게 다가와 빛을 비추어, 진실을 알려 주오. 그대의 광명한 빛으로 어둠의 자식들을 물리쳐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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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고린도 전서 1장 17-18절 ….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그것은 인간의 말재주로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말재주로 복음을 전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뜻을 잃고 맙니다. [18]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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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4 )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을 밝히는 힘, 곧 빛의 근본이었습니다. (본문 18절 참조)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사물은 정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사탄의 작간들의 실상이 보이고, 인간들의 죄상이 드러나고, 하느님의 진노하심과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손길이 보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는 우리의 죄인됨을 보게 되고, 회개와 구원의 길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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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밝히시고, 죄와 어둠의 실상을 드러내시며, 십자가와 복음진리로 구원의 길과 진리를 밝혀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달리사 피 흘리신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의 진실과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