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꽂이 재배법’ 복음 심기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마르코 복음서 4장 26-34절 …. [26]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놓았다. [27]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

[30]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31]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32] 심어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고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33] 예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비유로써 말씀을 전하셨다. [34] 그들에게는 이렇게 비유로만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에게는 따로 일일이 그 뜻을 풀이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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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제가 성경책을 가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이 휴전되고 서울환도가 이루어지던 해였습니다. 그 성경책은 ‘사복음과 사도행전’이라는 얄팍한 것이었습니다.

그 성경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개의 복음서와 사도행전 만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편지는 실려지지 않았고, 구약은 애당초 제외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성경은 불완전한 것이니까, 신구약 합본으로 성경을 가질 때에 가서야 온전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겠다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설교에서 듣기를,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던 이상재 선생(1850-1927)이 ‘105인 사건’으로 일제에 검거되어 옥중생활을 할 때에, 목재로 된 감방 마루를 청소할 빗자루가 없어 손바닥으로 매일 닦고 있었답니다.

뭔가 손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반복해서 문지르다 보니, 누군가가 종이를 돌돌 말아서 끼워넣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꺼내서 펼쳐 보니 성경 마태복음 5-7장, 이른바 ‘산상보훈’이었답니다.

옥중에서 아무 읽을거리가 없었던 차에, 한학 밖에는 모르던 이상재 선생이 반가운 마음으로 그 성경쪽지를 읽고 또 읽었답니다. 그러던 중 ‘나도 예수를 믿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나름대로 기도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출옥되고, 풀려나오자마자 목사님을 찾아가 그가 옥중에서 예수님을 믿기로 한 것이 올바로 된 것인지 여부를 물었답니다.

그 목사님은 감탄을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신앙을 터득했느냐고 놀라면서 그에게 물로 세례를 주어 기독교인이 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후 그는 한국 YMCA(세계기독교청년연합회)의 설립과 발전을 위해 크게 공헌했다는 말씀을 설교를 통해서 제가 듣게 된 것입니다.

단 6-7 페이지 분량의 산상보훈을 가지고도 기독교를 깨닫는 사람도 있는데, 사복음과 사도행전을 가졌으면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는 그 책을 ‘불완전한 성경’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후일 저는 신학교수 손모 목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가설입니다마는, 산상보훈만 가지고 기독교가 안 될까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대답도 안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일리 있는 가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2 ) 식물재배에 ‘꺾꽂이재배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씨가 있지만 씨로 번식시키지 않고도 그 식물의 뿌리나 줄기나 가지, 또는 잎사귀만 가지고도 그것을 땅에 심거나 수중재배로 자라나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가령, 채소류 가운데는 고구마, 고추, 토마토 등이, 화훼류 가운데는 장미, 국화, 제라늄, 베고니아 등이, 과수 – 관목 가운데는 무화과, 포도, 블루베리, 석류 등이, 허브류 가운데는 로즈마리, 민트, 라벤더 등이 이런 재배법을 따른다고 합니다.(ChatGPT 자료 참조)

기독교 입문을 하기 위해서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공부를 한 연후에야 기독교인이 되든가 못되든가를 결정하는 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복음서 하나 정도는 강해를 듣고 기독교인이 되어야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1927년 여름, 단 하루 저녁집회에서 고 김린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후, 찌든 유교 집안의 여인인 저의 조모 정대옥 여사가 기독교로 입문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완전히 ‘꺾꽂이 복음재배’로 성공한 케이스였습니다.

이것은 저의 집안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고 수많은 회심자들의 역사가 이렇게 하루 아침에 이루어졌지 않습니까? 옹근 복음의 씨앗이 아니더라도, 복음의 줄기나, 복음의 잎사귀를 마음에 심어서 기독교 신앙에 입문한 분들이 한 둘이겠습니까?

빌리 그레함 처럼 힘찬 설교를 할 수 없다고 전도를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학교수들의 변증신학의 ‘변’자로 모르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가 없겠지요. 복음의 곁가지, 아니 그 잎사귀 하나로도 복음은 전달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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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복음의 씨앗이 땅에 묻히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그 씨앗을 싹트게 하시고 자라 결실하게 하신다 하셨사오니, 저희가 열심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게 하옵소서. 우리가 전하는 말이 도달할 수 있는 마음 밭이면 어느 곳에나 아낌없이 생명의 복음 씨앗을 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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