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목자 없는 양’인듯 보신다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만도 1과 } 히브리서 12장 22-25절 …. [22] 그러나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잔치가 벌어져 있고 [23] 또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계시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24] 그리고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가 계시고 아벨의 피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가 있습니다. [25]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이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이를 거역한 자들도 형벌을 면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분을 우리가 뿌리친다면 그 형벌을 어떻게 면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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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과 율법을 주실 때에 마치 “가마에서 뿜어 나오듯 연기가 치솟으며 산이 송두리째 뒤흔들렸다”(출 19:18)고 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발산되는 존엄스러움이 너무도 장엄하여, 사람들이 시나이 산 주위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뵈었던 인간 모세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할 때에도 이렇게 분위기가 장엄했다면, 하느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시어,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의 뜻을 전할 때에는, 비록 인간의 언어로 조용히 부드러운 음성으로 전해 주셨을지라도,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고,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다하여 말씀을 받아들였어야 할 것이라고 히브리서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본문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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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도 성시 } 시편 23편 1-6절 …. [1]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2]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3]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5]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6]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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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 ) 우리가 애송하는 시편 23편에서 1-4절은 주님이 우리의 목자시고, 우리는 목자이신 주님의 양무리라는 관점에서 주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시입니다.

우리가 주 하느님의 양무리라는 말은, “ 1) 우리에게는 아무 부족함이 없다. 2) 주님께서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신다. 3) 비록 죽음의 위협을 당할 때라도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시므로 아무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시의 저자 다윗의 믿음이었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었고, 기독교 2천 년 역사를 관통하면서 뭇 성도들의 믿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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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르코 복음서 6장 32-34절 …. [32] 예수의 일행은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났다. [33]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일행이 떠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예수의 일행이라는 것을 알고는 여러 동네에서 모두 달려나와 육로로 해서 그들을 앞질러 그 곳에 갔다. [34]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군중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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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 )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인간 세상에 살면서 인간을 바라보시던 시각은 마치 ‘목자가 없는 양 무리’를 바라보시는 심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진정 저와 함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목자를 잃은 양 무리’로 생각됩니다. 아프리카의 이름도 괴이한 나라를 비롯해서 패권을 다투는 중국과 미국, 유럽의 나라들, 베네주엘라,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까지 ‘목자 잃은 양무리’들로 보이지 않습니까?

인공지능은 현재 부여된 지능의 수백 배에 달하는 지능으로 능력을 올려놓았다는데, 인간은 스스로 사유하기를 포기하려는 듯이 보입니다. 현실파악의 기능이 사라졌습니다.

<기도> 오, 주 하느님, 갈 곳 몰라 헤매는 저희 80억 인구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문명의 최정상이 어딘지 모른채 지금까지 줄곧 올라왔다고 자부했던 인류가 이제 갈 곳을 잃었습니다. 멸망 직전에 다다랐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지으신 이 아름다운 지구, 기적같은 작품이었던 이 지구를 영원히 파멸된 난장판으로 남겨둔 채, 저희가 영원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역사를 어서 종결하시옵소서. 마라나타.

모든 인류가 이제 골방에 꿇어앉아, 하느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드리게 하옵소서. 각국의 통치자들과 그들을 보좌하던 모든 사람들, 각계 전문가들, 특별히 주님의 뜻을 세상에 알리던 성직자들의 회개를 받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 역사의 흐름을 회생케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 홀로 세상을 주관하시며, 바로잡으시고, 진리의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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