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의 표징, 성도의 표징?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복음 } 마르코 복음서 8장 11-20절 …. [11] 파리사이들이 와서 예수와 논쟁하기 시작하며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온 표징을 요구했다.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는 어떤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14] 그런데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당부하셨다. “여러분은 주의하시오. 파리사이들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시오.” [16]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로 수군거렸다. [17] 예수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겠소? 여러분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오? [18] 여러분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오? 여러분은 기억하지 못하오? [19] 내가 빵 다섯 개를 5천 명에게 떼어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소?” 그들이 대답했다. “열두 광주리입니다.” [20] “빵 일곱 개를 4천 명에게 떼어주었을 때, 남은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소?” 그들이 대답했다. “일곱 광주리입니다.”

* = * <( 묵상 1 )> 파리사이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리신 메시아(구세주)라는 표징을 보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가령, 갑자기 하늘에 구름이 뜨고 그 위에 천군천사들로 이루어진 하늘 악대가 천지가 울리도록 음악을 연주한다든가, 또는 한 마디 명령으로 화산이 폭발하여 지중해 위에 제주도만한 섬이 하나 또 새로 생기든가 그런 놀랄만한 표징을 보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떠받들겠다는 것이었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연을 엉클어뜨리는 엉뚱한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병든 이들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불편을 도와주시려고 치유의 기적을 베푸시거나, 또는 베다니의 라자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 어느 회당장의 딸을 죽음에서 살려내셔서 그들의 가정의 결손을 감해주신 일은 있었지만, 의미없는 일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더구나 자신을 메시아로 알아보실 것을 기대하여 표징을 베푸시는 일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자비를 베푸시는 일에만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다만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늘에서 내리신 분임을 확연히 드러내심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어느 날 높은 산에 오르시어, 환한 빛 가운데 이미 하늘에 오르신 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께서 만나시는 장면을 보여주신 일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어떤 표징도, 인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하는 결정적 표징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들 만이 그가 자비의 하나님께서 보내신 대속의 제물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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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신 } 야고보의 편지 1장 1-11절 …. [1] 하나님과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사방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열두 사도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2]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련을 겪을 때 여러분은 그것을 참된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3] 믿음의 시련을 겪으면 인내력이 생긴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4] 인내심을 한껏 발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조금도 흠잡을 데 없이 완전하고 원만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5] 만일 여러분 가운데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아무도 나무라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넉넉히 주시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6]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간구하십시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파도와 같습니다. [7] 그런 사람은 아예 주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8] 의심하는 사람은 마음이 흔들려 행동이 안정되지 않습니다.

[9] 가난한 형제는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것을 기뻐하고, [10] 부유한 형제는 하나님께서 낮추시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라도 들에 핀 꽃처럼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11] 해가 떠, 뜨겁게 내리 쬐면, 풀은 마르고 꽃은 져, 그 아름다움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처럼 부자도 자기 사업에 골몰하는 동안 죽고 맙니다.

* = * <( 묵상 2 )>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자인하는 야고보가 쓴 편지에서, 사도들이나 성도들이 믿음 때문에 세상에서 시련을 겪을 때가 영광스럽고 기쁨에 넘치는 때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련이 가져다 주는 인내를 성숙시키는 때가, 성도들의 인격을 완전하고 원만하게 양육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믿지 못할 사람이라면, 아예 하나님께로부터 아무 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내에 지혜를, 지혜에 믿음을 더하라 권고하였습니다.

<< 두 아들과 어머니 >> 미국 북서부, 롱비치의 한 교회. 매주 주일이면 늘 앞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도하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 없이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며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10여년.

형편은 넉넉지 않았지만, 그녀의 삶에는 흔들림 없는 중심이 있었습니다.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그녀는 믿음 안에서 두 아들을, 정직하고 사랑 깊게 키우기 위해, 매일을 기도와 봉사로 채웠습니다.

어느 봄날, 두 아들은 집 근처 절벽이 낀 산 속에서 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막대기를 깎아 만든 창을 던지며 전쟁놀이에 열중하던 그 때, 저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지역의 저명인사가 명마를 타고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한 순간의 우연이 비극으로 변했습니다. 던져진 창 하나가 말의 눈을 스쳤고, 놀란 말은 미친 듯이 날뛰다가, 말과 기수가 그대로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아래는 돌투성이 협곡이었습니다. 저명인사와 명마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건은 곧바로 법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두 아들은 피고석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누가 말을 향해 막대기를 던졌는가?”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두 형제가 동시에 “제가 그랬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판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둘 다 자신이 했다고 하는가? 사실은 한 명만 했을 텐데…” 그러나 형제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서로 자신이 그랬다고 주장했습니다. 눈빛에는 두려움보다 결연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판사는 잠시 형제의 얼굴을 바라보다 조용히 방청석을 향해 말했습니다. “어머니를 법정으로 부르시오.”

잠시 후, 검은 옷차림의 여인이 증인석에 섰습니다. 판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부인, 법에 따라 한 아들만 사형에 처하면 됩니다. 그런데 형제는 서로 자신이 범인이라 주장하고 있소. 부인, 말에게 막대기를 던진 아들을 말해 주시오.”

법정 안이 얼어붙었습니다. 방청객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쏠렸습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 어떤 답을 찾아 헤매는 듯했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떠, 판사와 방청석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작은 아들입니다.”

판사가 말했습니다. “어떤 증거가 있으면 말씀해 줘야 합니다.”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큰 아이는 전처의 소생이고, 작은 아들은 제 몸에서 낳은 아이입니다.”

판사는 더 의아한 자세로 물었습니다. “그것이 어째서 작은 아들이 유죄라는 이유가 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예, 이치에 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제가 배운 신앙의 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제 친아들을 살리고, 전처의 아들을 죽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에 법정은 숨소리조차 사라졌습니다. 방청객은 물론, 판사조차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긴 침묵 끝에 판사는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30년 넘게 재판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만큼 인간애로 감동받은 적은 없습니다.”

판사는 잠시 서류를 정리하더니, 굵은 목소리로 판결했습니다. “판사의 권한으로 두 아들을 무죄로 석방합니다.”

그 순간, 법정 안에는 눈물이 번졌습니다. 두 아들은 서로를 끌어안았고, 어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무도 함성을 지르지 않았지만, 그 고요 속에는 한 가족의 사랑이 만들어낸 위대한 힘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롱비치 법정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라는 나라가 다른 나라나 마찬가지로, 비록 많은 실수와 과오를 저지르기는 하지만,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일들에서 비롯되는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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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그분이 참으로 저희의 구세주이심을 깨닫게 되었사오니,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저희도 사랑의 삶을 살아서 세상이,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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