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9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만도 1과 } 고린도전서 3장 16-23절 …. [16]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17]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18] 어느 누구도 자기 기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자기가 세속적인 면에서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19] 이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서에 “하느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제 꾀에 빠지게 하신다.”고 기록되어 있고 [20] 또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이 헛되다는 것을 아신다.” 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21]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2] 바울도 아폴로도 베드로도 이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3]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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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이 본문의 서두는, 고린도 교회 안에 서로 파당을 지어 다투는 현상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쓸 데 없는 다툼을 그칠 것을 교훈하고자 바울이 그의 편지에서 전한 권고의 말씀이었습니다.(고전 1:11절 이하)
다툼의 내용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 맞다’, ‘아폴로가 전한 복음이 맞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이 맞다’, 이러며 서로 다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서고금, 성도들 사이에서는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이 그들의 삶에서 누군가에게 감화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을 터인데, 자기에게 감화를 끼친 사람이 무조건 누구보다 옳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 2 ) 실상 제1세기 초대교회 안에 있었던 계파별 의견 차이와 이로 인한 갈등은 신약성경에 상세히 기록되지만 않았지, 대단한 알력이 있었음을 우리는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들의 율법주의 사고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들의 비유대인적 분위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의 염려의 대상이 되었으며, 바울의 공동체는 율법으로부터 탈출하여 은혜 중심적 사고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존재했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새 계명’(* 사랑)을 실천함에 역점을 두었을 것이고, 사도 요한의 공동체는 성삼위 하느님 안에서의 오묘한 일치,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오묘한 코이노니아(합일)에 관심이 깊었습니다.
이런 차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세기 이내에, 서로 교신이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의 갈등과 간극을 해소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비록 그들 각자의 경험과 관심은 달랐어도, 그들의 신앙의 토대가 ‘나사렛 예수’라는 한 분이신 메시아와 더불어 살았던 삶에서 시작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의 본문에서 보듯이, 1) 거룩한 교회가 되기를 힘썼고, 2) 문제가 발생하면, ‘하느님의 지혜’(자기를 부인하고, 희생을 바침)를 발동시켰으며, 3)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사회발전에 기여한 힘이었습니다.
( 3 ) 영국교회(성공회)의 예를 보더라도, 19세기 이래로 ‘소책자(트렉터리안) 운동’이라는 계몽기간을 일으킨 결과로 예전중심적 교회의 자리를 찾았고, 돌연한 웨슬레의 경건 운동으로 인해서 고교회-저교회의 분열 현상을 빚었지만, 다윈의 진화론을 비롯한 근대 과학과 산업구조와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교회를 향해 감당하기 힘든 도전을 주고 있을 때에도, 이 모든 현상을 도전으로 받지 않고 포용하는 각도에서 풀어가는 소위 ‘Broad Church’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영국교회는 새롭게 다가드는 단계적 도전을 받아가면서도, 신앙공동체가 소멸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발전을 거듭해 왔던 것입니다.
( 4 ) 제가 지난 50년간 한국 성공회를 경험한 것 역시, 1) 영국의 옥스포드 운동(소책자 계몽 활동)을 방불케 하는, 예전애호가들을 중심으로 한 성공회의 예전갱신을 통한 교회의 발전을 추진하던 그룹을 보았고, 2) 은사주의 교파들의 영향을 받아, 은사 운동을 통한 교회의 갱신을 추진하는 그룹의 활동을 보았으며, 3) 교회의 메카니즘을 사회발전에 접목시키려는 이들이, 해방신학-민중신학적 접근을 선교에 도입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을 복음서의 ‘오클로스’(민초)로 인식하는 그룹의 진력을 보았습니다.
이 셋은 이제 그들의 경험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조화롭게 합일된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 긴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들 각각의 운동이, 서로 ‘반복음적’이라는 상호거부를 하지 않는 한, 똑같은 ‘예수 경험’에서 그들의 삶을 시작했기 때문에, 교회의 발전과 이를 통한 사회선교에 기여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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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저희 교회가 먼저 하느님의 거룩을 닮아 거룩을 힘쓰게 하옵소서.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느님의 지혜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게 하옵소서. 교회와 성도들이 자만하지 말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어려운 시대에 교회에 맡겨진 본무를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