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11일, 본문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구약 } 다니엘서 9장 4-6, 8-10절 …. [4] 나는 주 나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고백하고 아뢰었다. “위대하시고 두려우신 주 하나님,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언약과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 [5] 우리가 죄를 짓고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악한 일을 저지르며, 반역하며, 주님의 계명과 명령을 떠나서 살았습니다. [6] 우리는, 주님의 종 예언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과 지도자와 조상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는 것을 듣지 않았습니다. … [8] 주님, 우리와 우리의 왕과 지도자와 조상이 낯뜨거운 수치를 당한 것은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용서하여 주셨으나, 우리는 하나님께 반역하였습니다. [10] 우리가 우리 주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종 예언자들을 시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신 율법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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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1 )> 유다가 바빌로니아제국에게 침략당한 후 17년 동안, 포로로 바빌로니아에 붙들려간 다니엘 일행은, 두고 온 산하, 곧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이방민족에게 더럽힘을 당하고 있는 성전을 생각할 때, 회개의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옛 선조들의 무책임한 정치, 위기를 당해서도 방심하고 있었던 선조들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나(우리)의 잘못”이었다며 자성하고 있습니다.(본문 5, 8-10절)
우리나라를 생각하면서, 우리들의 정치가 낙제점이라며 탄식을 합니다. 경제문제도 안보문제도 외교문제도 왜 국민이 내일에 소망을 둘 수가 없느냐고 현직에 있는 행정부 책임자들과 모든 종사자들을 힐난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서 오늘 우리가 배우는 바가 있습니다. 왜 나라살림을 특정 정당과 거기 속한 특정 인물들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나라살림을 맡긴 이들이 그 누구도 아니고 국민들인데, 왜 국민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집행자들만 탓하느냔 말입니다.
책임에 관한 한, ‘내게’ 책임이 있는 것을 오늘 자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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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누가복음서 6장 36-38절 …. [36]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남을 정죄하지 말아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정죄하지 않으실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38] 남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서,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도로 되어서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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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2 )> 이 본문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피차에 잘잘못은 따질 것 없이, 서로 없던 일로 덮어버리면, 어느 누구도 벌 받을 일 없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 얼마나 병든 사회입니까? 불의를 묵인하고 악을 방치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바로 읽어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정의를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이, 심판하실 분인 하나님처럼 행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불의한 일을 행하고서 권력으로 덮어버리려 했던 왕 다윗을 책망했으며, 선지자 엘리야는 불의한 아합 왕을 목숨을 걸고 고발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 역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착취행위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규탄했던 것입니다.
불의를 견제하는 사회적 장치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증오의 차원에서 원한을 갚는 복수의 일념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고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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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믿음의 선배 >> : 데이빗 주교(Bishop David 또는 Dewi, ? – 601년, 웨일스의 수호성인, 웨일스 메네비아의 주교)
데이빗은 6세기의 수도자였고, 주교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금욕생활에 힘썼던 영적지도자였고, 그의 겸허한 삶과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며 섬긴 자세는 만인의 칭송을 받습니다. 메네비아에 수도원을 창설했고, 그 밖에도 열두 곳에 수도원을 세워서 당시의 교회의 역할을 주선하게 했습니다.
그의 수도원 규정은 대체로 이집트 지방의 수도원들이 가지고 있던 규정을 따른 것으로, 노동을 중요하게 여겼고, 음주를 금지했으며, 침묵을 강조했던 것은 쓸데없는 담화로 수도자들의 영혼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 신앙전통 속에 있던 수도자들에 의해 온 웨일스 지방들의 목회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로써 일찍부터 웨일스의 결속력이 강화되었고, 특별히 웨일스 언어를 통일하고, 문학을 발전시킴으로 교회에 의해서 시민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사후에 온 웨일스 국민들이 그를 지금껏 수호성인으로 추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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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사랑과 용서의 이름으로 불의를 묵과하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특별히 과거의 역사를 캐내어 선조들의 책임을 묻기보다 오늘에 살고 있는 ‘나’의 책임, ‘우리’의 책임이 중대한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