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18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다니엘 3장 16-24절 ….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대답했다. “저희는 임금님께서 물으시는 말씀에 대답할 마음이 없습니다. [17]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주실 힘이 있으시면, 임금님께서 소신들을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넣으셔도 저희를 거기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18]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을 섬기거나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신상 앞에 절할 수 없습니다.” [19] 느부갓네살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말을 듣고는 금방 안색이 달라지며 노기에 차서 화덕의 불을 여느 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지피도록 하고, [20] 군인들 가운데서도 힘센 장정들을 뽑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 활활 타는 화덕에 집어넣으라고 명하였다. [21] 사람들은 그들을 도포와 속옷 등 옷을 입고 관을 쓴채로 묶어서 활활 타는 화덕 속에 집어넣었다. [22] 왕명이 그만큼 급했던 것이다. 화덕이 너무나 달아 있었으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넣던 사람들이 불길에 타 죽고 말았다. [23]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세 사람은 꽁꽁 묶인 채 불타는 화덕 속에 던져졌다. [24] 그들은 불길 가운데를 걸으면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찬미를 드렸다.
~~~~ ~~~~
<( 말씀 묵상 )> 저는 지금까지 성경을 읽으면서, 인간이 하느님을 떠나는 길을 크게 네 가지로 대별합니다.
가) 인간이 하느님을 떠나는 첫번째 길은 <먹고 살아야겠다>며 떠납니다. 처자식이 굶고 앉았는 것을 보는 가장이 도둑질이라도 해서 가족들 입에 풀칠하겠다는데 뭐가 잘못이냐, 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풀칠이야 좋지만, 그것이 남의 것 도둑질해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옛날 족장 야곱의 형 에사오가, 들에서 허기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그의 동생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식욕은 본능이고, 참기 어렵습니다. 에사오는 동생에게 죽 한 그릇 달라고 합니다. 그 기회를 노리고 야곱은 형에게 상속권을 자기에게 주면 죽을 주겠다고 합니다.
에사오는 “그따위 상속권이 무슨 소용있냐? 가질 테면 가져라.” 하고 콩죽 한 그릇과 떡 몇 덩이 얻어먹고 장자 상속권을 팔았습니다.(창 25:29-34) 이로써 천추의 한이 된 것이지요.
똑같은 시험을 우리 주 예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하지 않았느냐, 일갈하시고는 물리치셨습니다.
후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 7:31, 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며, 하느님을 떠나 불법과 불신앙을 자행합니다.
나) 인간이 하느님을 떠나는 두번째 길은 <죄악과, 욕정과, 불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떠납니다. 사람을 해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서, 음욕을 통제할 길이 없어서, 남의 물건에 너무 탐을 내어, 또는 거짓말 한 마디만 하면 내게 큰 이익이 생기는데, 이런 유혹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충동이 주장하는 대로 자기를 맡기면서 하느님을 등집니다.
다윗 왕과 같은 위대한 신앙인이요, 백전백승의 장수요, ‘성공의 사례’가 될만한 인생이 어디 또 있었습니까? 그러나 그가 인생말년에 이르러, 정욕을 이기지 못해, 급전직하로 하느님의 법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밧세바에게 눈길을 뺏긴 그는 그 날로 그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 뿐입니까? 그의 남편이며, 지금 전장에 나가서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는 우리야 장군을 죽음의 올가미에 걸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위대한 업적인 다윗왕국은 남북조(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적 충동이나, 몇 푼 안되는 물질을 탐하여 귀한 명예를 잃고, 하느님을 떠나고 맙니다.
다) 인간이 하느님을 떠나게 되는 세번째 길은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부득이한’ 방법으로> 떠납니다.
세상권세와 마귀가 하느님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최종적인 방법이 목숨의 위협입니다.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니엘의 세 친구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다며, 느부갓네살과 그의 신상 앞에 절하기를 거절합니다. 이 때에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가차없이 가혹한 벌을 줍니다. 화덕에 넣어 태워죽이는 형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앙을 어여삐 여기셔서 그 뜨거운 화덕 속에서 오히려 찬송을 부르며 살아 나오게 하셨습니다.(단 3:97)
지금 이 세상은 복음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무슬림 국가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보는 족족 죽이고, 일부 공산국가들이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있고, 어떤 나라에서는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한다면서도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려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언론자유가 심각하게 유린 당한 가운데, 민심이 흉흉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장차 우리나라의 운명이 될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라) 이 말세에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다며, ‘인본주의라는 거짓 복음’을 강단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본주의라는 네번째 길로 멀쩡한 기독교인들이 빗나가고 있습니다.
제1세기 교회들도 인본주의적 목적을 지닌 자들이 교회를 어지럽힌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로가 경계하여 말하기를, “사람을 좋게 하려느냐, 하느님을 좋게 하려느냐?”(갈 1:10) 했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참 복음이라 했습니다.(고전 1:23)
그러므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느님을 의지하고, 하느님의 법 안에서 살려는 자들을 ‘박해’라는 키질로 믿음을 시험 받게 하여, 승리하는 자 만이 하느님의 나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마태 24:9-13, 야고보 1:12, 계시록 2:10, 3:5, 21:7 등등)
~~~~ ~~~~
<기도> 주 하느님, 비록 사탄이 저희에게 하느님을 등지고 떠나는 길을 활짝 열어놓고 저희를 시험하여도, 저희가 영원불변한 하느님의 사랑을 떠나지 않게 지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 만을 따르며, 마침내 사탄을 이기어 주님과 함께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