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인이며 구주이신 하나님

<사순절 제23일, 본문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구약 } 이사야서 65장 17-19절 …. [17]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18]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아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 찬 도성으로 창조하고, 그 주민을 행복을 누리는 백성으로 창조하겠다. [19]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 되고, 거기에 사는 백성은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니, 그 안에서 다시는 울음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 성시 } 시편 30편 1-5절 …. [1] 주님, 주님께서 나를 수렁에서 건져 주시고, 내 원수가 나를 비웃지 못하게 해주셨으니, 내가 주님을 우러러 찬양하렵니다. [2]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께 울부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습니다. [3] 주님, 스올(* 지옥)에서 이 몸을 끌어 올리셨고, 무덤으로 내려간 사람들 가운데서, 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4] 주님을 믿는 성도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여라. [5]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넘친다.

{ 만도 2과 } 마가복음서 7장 31-37절 ….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32]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33]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 (그것은 ‘열리라’는 뜻이다.) [35]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36]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으나,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37]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였다.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 말씀 묵상 )> ( 가 ) 한국전쟁이 일어난 것이 1950년의 일이었고, 1949년의 북한의 초등학교(‘인민학교’라고 불렀음)들은 전쟁 준비의 일환으로 모든 학생들을 ‘인민소년단’으로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군사훈련은 주로 주일에 소집해서 훈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주일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학생들 가운데는 그 훈련에 빠지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반동분자’ 학생들에게는 ‘품행’점수를 매기는 제도를 두어서,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우등상을 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희 반 담임선생님(저는 지금도 그분 성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은 인민소년단 훈련에 불참하는 기독교인 우등생에게는 선생님께서 별도로 준비한 상품을 주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은 대단한 신념과 용기가 없으면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기독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결정과 행동은 실상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 나 ) 저는 성직자로 적지 않은 사람들의 결혼식을 주례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가슴에 느껴지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혼인서약을 하는 신랑과 신부를 볼 때에 느껴지는 감동입니다.

혼인서약을 하는 당사자들이, 자기의 남편 될 사람과 아내 될 사람의 사랑의 언약을 하나님 앞에서 하도록 시킵니다. 그것이 교회의 혼인예식이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게 서약을 해 놓고도 못믿을 짓을 해서 이혼하는 예도 있지마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혼인서약을 의지하고 싶어하는 것은, 하나님은 변치 않을 분으로 인식하고 또 믿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의 혼인예식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주례자도 세우지 않고, 부부 될 신랑 신부 둘만 회중 앞에 나와 서서 서로의 약속을 하는 형태로, 그것을 결혼식이랍시고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당돌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미더우냐는 말씀입니다. 믿을 분은 하나님 밖에 없지 않습니까?

( 다 ) 세상에는 절대자이신 한 분 주인이 계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변함없을 규정들은 오직 그분에게서 나옵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우주에 질서를 두셨고, 조화를 두셨으며, 만물을 선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ㄱ)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1:1)의 말씀은 이것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한복음서 1:1)고 하신 말씀도 이것을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ㄷ) 예전적교회들이 공기도에서 영광송, 즉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또한 이제와 영원히 있을지어다” 라고 드리는 찬송은, 세상에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재확인해 드리기 위해 있는 기도입니다.

ㄹ) 또 사도 바울이 그의 모든 서신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빌면서 편지를 마감하는 뜻도 역시, 하나님께서 인류와 화해(평강)하고자 하시는 간절한 소망이 인류의 소망의 근거가 되었으며, 화해하실 방법으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의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십자가의 수난으로 죄를 대속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신 그 ‘은혜’가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ㅁ)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의 주인이 계시다는 사실은 우리들의 신앙내용 가운데도 가장 핵심되는 신앙인 것이며, 여기서부터 우리들의 영적 인식이 탑처럼 쌓아올려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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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저희의 주인이 되시는 주 하나님, 저희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으므로, 저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있는 것임을 믿습니다. 이 사순절에 저희의 존재의 근거를 다시 확실히 다짐하게 성령님, 도와 주시옵소서. 오로지 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저희의 숨쉬는 삶과 생각하는 모든 일들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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