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24일, 본문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구약 } 에제키엘 47장 1-9절 …. [1] 나는 다시 그분에게 이끌리어 성전 정문으로 가보았다. 그 성전 정면은 동쪽을 향해 나 있었는데, 그 성전 동쪽 문턱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물은 제단 남쪽으로 해서 성전 오른쪽 벽에서 뻗은 선을 타고 내려갔다. [2] 나는 그분에게 이끌리어 북문을 나가 바깥 길로 해서 바깥 동문께로 돌아가 보았다. 물이 그 대문 오른쪽에서 솟아나는 것이 보였다. [3] 그분이 측량줄을 가지고 동쪽으로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발목에 찼다. [4] 그분이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무릎에 찼다. 그분이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허리에 찼다. [5] 그분이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러보니,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이나 치면 건널까, 걸어서는 건너지 못할 강이 되어 있었다. [6] “너 사람아, 보지 않았느냐?” 하고 말하며 그분은 나를 강가로 도로 데리고 갔다. [7] 되돌아와 보니 강을 끼고 양쪽에 나무가 무성한 것이 보였다. [8] 그분이 말씀하셨다. “이 물은 동쪽으로 가다가 메마른 벌판으로 흘러내려 사해로 들어간다. 이 물이 짠 사해로 들어가면 사해의 물마저 단물이 된다. [9] 이 강이 흘러 들어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온갖 생물들이 번창하며 살 수 있다. 어디로 흘러 들어가든지 모든 물은 단물이 되기 때문에 고기가 득실거리게 된다. 이 강이 흘러 들어가는 곳은 어디에서나 생명이 넘친다.
<( 말씀 묵상 )> 에제키엘 예언서는 요한계시록 처럼 깊은 뜻을 담은 환상들을 실었습니다. 영적 해석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물의 환상’은 참으로 웅장한 환상입니다. 여기서 물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의 은혜’ 또는 ‘예배의 은혜’라고 볼 수 있고, 신약적 개념으로 풀면, ‘복음의 은혜’로, 또는 ‘성령의 감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전하시는 구원의 복음이 교회 중심으로부터 흐르기 시작하여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점점 그 복음의 권능이 사면에서 나타나게 되어, 결국에는 만백성이 구원의 은혜 안에 잠기게 되는 것을 보여 주는 환상입니다.
구원의 복음은 아무리 광야 같은 곳으로 흘러가도, 땅을 적시며, 다시 큰 강을 이루어, 더욱 풍성해져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을 얻게 하여, 생명이 없었던 광야에 울창한 숲을 이루듯, 하느님의 나라가 왕성하게 된다는 격려를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비전인 것입니다.
~~~~ ~~~~
{ 복음 } 요한복음서 5장 2-3, 5-16절 …. [2] 예루살렘 양의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베짜타 라는 못이 있었고, 그 둘레에는 행각 다섯이 서 있었다. [3] 이 행각에는 소경과 절름발이와 중풍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는데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5] 그들 중에는 삼십팔 년이나 앓고 있는 병자도 있었다. [6] 예수께서 그 사람이 거기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아주 오래된 병자라는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7] 병자는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는 동안에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8] 예수께서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거라.” 하시자 [9] 그 사람은 어느새 병이 나아서 요를 걷어들고 걸어갔다. 그 날은 마침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은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니까 요를 들고 가서는 안된다.” 하고 나무랐다. [11] “나를 고쳐주신 분이 나더러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대꾸하자 [12] 그들은 “너더러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라고 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 하고 물었다. [13] 그러나 병이 나은 사람은 자기를 고쳐준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이미 자리를 뜨셨고 그 곳에는 많은 사람이 붐볐기 때문이다. [14] 얼마 뒤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자, 지금은 네 병이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더욱 흉한 일이 너에게 생길지도 모른다.” 하고 일러주셨다. [15] 그 사람은 유다인들에게 가서 자기 병을 고쳐주신 분이 예수라고 말하였다. [16] 이 때부터 유다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신다 하여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 말씀 묵상 )> 베짜타라는 못이 있습니다. 이곳은 고여 있는 물이지만, 때때로 동한다고 했으니까, 지하에 흐르는 물과도 연결되어 있는 물인 듯합니다.
그러나 이 물은 위의 에제키엘 47장에 나오는 물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물이었습니다. 그 물이 동할 때면, 여러 가지 병을 낫게 한다 해서, 수많이 환자들이 와서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38 년 동안이나 중풍으로 고생하던 사람이, 낯선 예수님께서 자기를 좀 도와 주실까 하여, 물이 동할 때 자기를 물 속에 빨리 넣어 주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짜타 못의 물의 효험을 빌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물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의 중풍병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베짜타의 물을 사모하던 중풍병자에게, 치유보다 강한 능력, 곧 생명과 구원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초미의 관심은 ‘호르무즈 해협’ 바닷물에 가 있습니다. 그곳을 닫고 있는 이란의 병사들이 우리들의 삶을 옥죄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의 국가공동체의 성격을 강압적으로 변화시키기를 바라는 강대한 미국의 군사력이 있습니다. 이란 병사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그들의 생명줄로 삼고 견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온 세계는 고통 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결국 이란과 미국은 함께 전쟁의 함정 속으로 빠져들어갈 터이고, 온 세계가 더욱 깊은 질곡 속에서 허덕이게 생겼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옵소서.
~~~~ ~~~~
<기도>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주 하느님, 지금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통 당하는 이란도 살려 주시고, 전쟁의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미국도 살려 주시옵소서. 하느님께서 이 온 세계의 주인이시오니, 도탄에 빠진 세계 모든 나라들을 복음으로 구원하시고, 빛으로 갈 길을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