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34일, 말씀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요한 복음서 11장 45-53절 …. [45] 마리아를 찾아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더러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일러바치기도 하였다. [47] 그래서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의회를 소집하고 “그 사람(* 예수)이 많은 기적을 나타내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그대로 내버려두면 누구나 다 그를 믿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백성을 짓밟고 말 것입니다.” [49] 그 해의 대사제인 가야파가 그 자리에 와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그렇게도 아둔합니까?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51] 이 말은 가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을 한 셈이다. 그 예언은 예수께서 유다 민족을 대신해서 죽게 되리라는 것과 [52]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죽는다는 뜻이었다. [53] 그 날부터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 묵상 1 )> 예수님께서 놀라운 기적들을 곳곳에서 베푸시고, 전하시는 모든 말씀이 천상의 소식인 것을 미루어 보아, 그분이 메시아일 것이라는 사실은 유다인이라면 대부분 동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끝내 메시아일 리가 없다고 고집을 세운 사람들이, 세속권력의 최고봉인 대사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총독)의 비호 아래 유다인들을 통치하며 권세를 누리는 이들이었습니다.(그의 지위가 종교지도자인 ‘대제사장’이었을 뿐이고, 실제로 그가 누린 권한은 로마의 식민지 유다를 통치할 권한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현상을 대단히 큰 위협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나, 의인이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은, 불의한 권력 때문이었습니다. 의인의 대두가 그들에게는 기득권을 빼앗길 결정적 위협이기 때문에, 의인을 초기에 진압했습니다.
대사제 가야파의 발상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제국의 치하에 있는 유다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서는, ‘한 사람’(예수) 정도 희생시키는 것 쯤은, 오히려 현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라는 논리를 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예언자 급의 발언이었겠습니까? 가야파가 불경한 소리를 지껄인 것이, 도리어 ‘만민을 구원하시는 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영적 내용을 담은 예언처럼 들리게 되었다는 ‘쓴 웃음’ 격의 표현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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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 } 에제키엘 37장 7-10, 21-23절 …. [7]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내가 말씀을 전하는 동안 뼈들이 움직이며 서로 붙는 소리가 났다. [8]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뼈들에게 힘줄이 이어졌고 살이 붙었으며 가죽이 씌워졌다. 그러나 아직 숨쉬는 기척은 없었다. [9] 야훼께서 나에게 또 말씀하셨다. “숨을 향해 내 말을 전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숨아,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죽은 자들을 스쳐 살아나게 하여라.’ ” [10] 나는 분부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였다. 숨이 불어왔다. 그러자 모두들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서서 굉장히 큰 무리를 이루었다. …. [21] “사람들에게 일러주어라. ‘주 야훼가 말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나 이제 뭇 민족들 가운데서 이끌어내리라. 사방에서 모아 고국으로 데려오리라. [22] 그들을 나의 땅 이스라엘 산악 지대에서 한 민족으로 묶고 한 임금을 세워 다스리게 하리니, 다시는 두 민족으로 갈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반으로 갈라져 두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다. [23] 그리고 나를 거역하여 온갖 죄를 지으며 보기에도 역겨운 우상들을 섬겨 몸을 더럽히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배신하여 온갖 탈선 행위에 빠졌던 그들을 건져 정하게 해주리니, 그들은 다시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 묵상 2 )> ‘숨’은 히브리어로 ‘루아흐’ 곧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바람)이 해골들 위에 불어오니, 마른 뼈다귀들이 서로 연결되며 살아나고, 모두 일어나 큰 무리를 이루어 출동하더라는, 유명한 에제키엘의 환상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나라를 잃고 타국 땅에 포로로 잡혀가, 마치 죽어 무덤에 묻힌 시체들 같은 신세가 되었으나, 성령의 일깨우심을 받는 날, 하느님의 정병들이 되어, 감옥 같은 포로생활을 끝내고, 사명의 땅으로 전진하게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격려성 환상이었습니다.
예전적교회들은 내일(성지주일) 주일 예배를 행진으로 시작합니다. 그 옛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던 예수님을 ‘호산나’로 환호하던 무리들을 본받아, ‘성지’(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이것은 메시아(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내 생애, 내 가족, 내 나라에 맞아들이는 행진이요, 불신세계를 향한 주님과 주님의 추종자들이 보여주는 도전의 행진입니다.
예년의 성지주일 행진을 보면, 종려가지만 들었지, 참으로 맥없는 행진입니다. 호산나 찬미를 우렁차게 부르면서 힘찬 모습으로, 우리들의 혼으로, 세상 앞에 주님의 행진을 보여주는 도로상의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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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느님, 예수님의 수난 일정 40일을 보내면서, 이윽고 세속권력자들의 소굴 예루살렘을 향하여 입성하시던 일을 기념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의 통치만이 영원하심을 저희들의 온 마음으로 선포하는 행진의 예배가 엄숙하고도 강렬한 도전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