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

<성주간 월요일,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서신 } 히브리서 9장 11-15절 …. [11] 그러나 그리스도는 장차 올 좋은 일을 모두 주관하시는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사제로 일하시는 성전은 더 크고 더 완전하며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 성전은 창조된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습니다. [12] 그리스도는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시어,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그분 자신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히 속죄받을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3] 부정한 사람들에게 염소나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만 뿌려도 그 육체를 깨끗하게 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면, [14] 하물며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흠 없는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죽음의 행실을 버리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데에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1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먼젓번 계약 아래서 저지른 죄를 용서받게 하시려고 돌아가셨습니다. 따라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유산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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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요한 복음서 12장 1-11절 …. [1] 예수께서 유월절 축제를 엿새 앞서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를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와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어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 330그램)를 가져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 드리니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했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 나중에 예수를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룟이 말했다. [5] “어찌하여 그 향유를 삼백 데나리(* 1데나리온은 하루 일당이었음)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했다.

[7] 예수께서 이르셨다. “이 여인을 그냥두시오.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일을 계속하게 하시오.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여러분 곁에 있지만, 나는 늘 여러분 곁에 있지 않을 것이오.”

[9] 예수께서 그곳에 계시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대제사장들은라자로도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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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예수님은 하나님과 한 분이신 하나님이셨지만,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고자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속죄를 위한 제사법에 의하면 죄 지은 인간을 대신해서 양이나 소를 죽여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공생애를 통하여 메시아로서의 모든 일(복음 전파, 제자 양육, 속죄제사)을 마친 후, 이윽고 때가 이른 것을 아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전에서 드리는 속죄제사는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이 집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인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는 예수님께서 친히 제사장이 되시고, 유다인의 성전이 아닌, 온 인류를 위한 더 큰 제사를 드리러 갈보리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이 일을 앞두고 예수님 일행은 예루살렘 여행을 마치고 베타니아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뜻하지 않았던 대접을 받으셨습니다. 라자로의 누이동생 마리아가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린 일이었습니다.

이스카룟 유다가 이 행동을 보고 있다가, 시비를 걸었습니다. 비싼 향유를 낭비한다고 야단을 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장례)을 준비하는 일이니 그냥 두라고 유다를 타일렀습니다.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지척인 베타니아에 살고 있었으므로, 유다 권력자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도, 그들 권력자들의 흉계를 전혀 피하려는 내색이 없으신 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장차 예수님을 다시 뵙기 힘들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기에 이런 최상의 대접(예배)을 해올린 것으로 보입니다.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지니는 생존본능이 왜 없으셨겠습니까? 그렇지만, 메시아로서의 사명감이 그의 생존본능을 어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주간 월요일에 우리 성도들이 함께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견딜 수 없는 치욕과 엄청난 고통을 몸소 당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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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친히 인간이 되시어, 저희의 죄를 대속하시는 제사를 드려 주시면서 제물이 되셨사오니, 저희가 입이 만 개가 있어도 다 감사드릴 수 없나이다. 이 속죄의 죽으심을 기억하면서, 저희가 죄와 악의 권세를 철저히 미워하게 하옵소서. 성령님께서 저희 마음을 늘 주장하시어,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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