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구약 } 이사야 49장 1-3, 5, 7절 …. [1] 너희 섬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너희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이미 모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태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 [2]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셔서, 나를 주님의 손 그늘에 숨기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로 만드셔서, 주님의 화살통에 감추셨다. [3]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아, 너는 내 종이다. 네가 내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 [5]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그의 종으로 삼으셨다. 야곱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모으시려고, 나를 택하셨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귀한 종이 되었고, 주님은 내 힘이 되셨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 [7] 이스라엘의 속량자, 거룩하신 주님께서, 남들에게 멸시를 받는 사람, 여러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 통치자들에게 종살이하는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왕들이 너를 보고 일어나서 예를 갖출 것이며, 대신들이 또한 부복할 것이니, 이는 너를 택한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 신실한 나 주 하나님 때문이다.”
{ 서신 } 고린도전서 1장 17-18, 22-24절 …. [17]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이 되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 [22]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24]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 복음 } 요한복음서 12장 23-25, 32-36절 ….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24]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25]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전할 것이다. …. [32] 내가 땅에서 들려서 올라갈 때에,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이다.” [33] 이것은 예수께서 당하실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하려고 하신 말씀이다. [34] 그 때에 무리가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인자가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인자가 누구입니까?” [35]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빛이 있는 동안에 걸어다녀라. 어둠이 너희를 이기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36] 빛이 있는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어서, 빛의 자녀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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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1 ) 고금동서 인간의 삶의 동력은 거룩과 사랑과 의가 아니라, 죄악과 거짓과 선동이었습니다. 오늘날 강대국, 약소국 할 것 없이 죄악과 거짓과 선동이 그들의 동력 아닌 나라가 있습니다니까?
좌파세력, 우파세력 할 것 없이, 나라를 운영한다는 자들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만 하면 죄악과 거짓과 선동을 일삼습니다. 큰 사람은 크게, 작은 사람은 작게 죄를 저지르고, 거짓말을 하고, 선동을 하고 살 뿐이지, 우리 인간들의 삶의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은, 이를 범하는 사람들이나 당하는 사람 할 것 없이, 이제 지칠대로 지쳐 있습니다마는, 이런 죄악을 문제시하면서도, 죄악을 몰아낼 힘이 없습니다.
때때로 이러면 안 된다고 입으로는 말도 하고, 때때로 떼를 지어 봉기도 하지만, 그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악한 세력으로 변질하여 죄악과 거짓과 선동으로 세상을 더럽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세상에 오시면서, 인간들과 ‘힘대힘’으로 맞짱 뜰 계획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들 앞에 목숨을 내어놓으시고, 죽으면서 이기시고, 죽으면서 열매 맺는 구세주의 논리로 사셨습니다.(요 12:24)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 2 )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모태에 계실 때부터 하나님의 도구로 지음을 받으셨고, 하나님의 종으로 ‘속량자’(* ‘죄를 대속하시는 제물’이라는 뜻)의 역할을 하게 되실 것이라고 예언된 바가 있었습니다.(본문 이사야 49:1-2, 7)
비록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종으로 잉태되셨다고 하지마는,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성장과정의 어느 시점에 메시아로서의 인식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메시아의 인식이 있고 나서,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시작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살 때 이미,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셔서 성전에서 만났던 율법학자들과 장로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토론하고 계셨습니다. 사흘만에야 다시 만나게 된 어머니를 향하여 어린 예수님이,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눅 2:49) 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이미 메시아 인식을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맞다면, 그 즈음으로부터 20년 동안은 줄곧 십자가로 향한 메시아의 사명을 묵상하면서 사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들의 삶을 관찰하셨을 것이고, 인간의 역사속의 변곡점이 발생하는 때마다 무엇이 작용했던가를 보셨을 것입니다. 모두가 악과 거짓과 선동으로 점철된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마음 속에 다지고 다진 생각은 이 죄악상을 거두어내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대답은 <십자가>였습니다.
( 3 ) “인자(* 메시아의 별칭)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는 말씀에서 왜 ‘십자가’라 하지 않으시고, ‘영광’이라 하셨는지가 궁금하십니까? 성경에서 사물의 ‘본질적 사명’이라는 뜻으로 ‘영광’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서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들의 영광이 다릅니다. 별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메시아는 메시아로서의 본질적 사명이 십자가를 지는 것인데, ‘영광을 받으실 때가 되었다’는 말씀으로 ‘사명의 때가 이르렀음’ 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복음본문에서 “내가 땅에서 들려서 올라갈 때에”(요 12:32) 라고 하신 말씀 역시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뜻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병정들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순종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서슴없이 당하신 것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인간의 헛된 욕망들을 거절하라는 가르침이셨고, 좋은 언어들을 권력의 구호 삼아 자신의 방패로 변질-왜곡시키지 말라는 가르침이셨고,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논리로 진리체계에 혼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가르침이셨습니다.
그리하여 구세주께서, 이 대책없는 인류를 위하여 하실 일은, <십자가>에 곱게 오르시는 일 뿐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구구한 언어는 더 필요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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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아들의 목숨을 내어놓으실 수 밖에는 없었던 처절하신 고통에 송구하고 죄스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희의 배신과 반역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오르시도록 두셨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저희의 나약함을 용서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