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옷 유다의 실패

<성주간 수요일, 복음 묵상> ……….. (공동번역성서 개정판)

{ 복음 } 요한 복음서 13장 21-30절 ….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몹시 번민하시며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 하고 내놓고 말씀하셨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가리켜서 하시는 말씀인지를 몰라 서로 쳐다보았다. [23] 그 때 제자 한 사람이 바로 예수 곁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눈짓을 하며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보라고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께 바싹 다가앉으며 “주님, 그게 누굽니까?” 하고 묻자 [26] 예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줄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셨다. 그리고는 빵을 적셔서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아 먹자마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 때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28] 그러나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왜 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아보고 있었기 때문에 유다에게 명절에 쓸 물건을 사오라고 하셨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신 줄로만 알았다. [30] 유다는 빵을 받은 뒤에 곧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 ~~~~~

<( 묵상 )> ( 1 ) 가리옷 사람 유다는 다른 제자들이나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예수님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예수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 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을 둘 씩 짝지워 복음전파의 사역을 체험하게 하셨던 때에도 그 일원으로 파견되어,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던 영적 사역의 능력까지 체험했던 ‘사도 후보자’였습니다.(마 10:1-15)

그러한 유다가, 자신의 스승이며, 또 메시아(그리스도)이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러 오신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의 길로 몰아넣고 있었다는 사실은, 다른 제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본인 자신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던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되었을 때의 마음과 3년 후인 예루살렘 마지막 방문 때의 마음은 달랐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메시아의 사명’에 관한 이해에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다가 생각했던 메시아는, 당사자이신 예수님의 메시아관과는 달라서, 현실적인 지배세력, 곧 로마제국과 그 앞잡이인 총독, 그리고 그가 임명한 대제사장들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동족 이스라엘 사람 모두를 로마제국의 노예로 팔아먹는 대제사장과 그를 협력하고 있던 권세가들을, 그리고 로마제국의 꼭두각시 왕 헤롯과 그의 졸개들을 모두 세상에서 몰아내고, 영광스럽던 다윗왕조를 부활시킬 늠름한 지배자를 유다는 바랐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자-타칭 메시아(그리스도)인 예수에게서 그런 천지개벽의 주인공 모습은 볼 수가 없었고, 맥없이 예루살렘의 권세가들의 손에 붙잡혀 십자가형을 당하실 것이라는 말만 계속하고 있을 때, 회의에 빠졌다고 해야 할까요, 분노했다고 할까요, 배신감에 휩싸이게 되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유다는 이 갈등 속에서, 드디어 발견한 것이, 자기 나름의 빼어난 아이디어라고 여겨지는 방안이었습니다. 기왕에 언제 부딪쳐도 부딪칠 두 개의 힘을, 한 번 제대로 맞붙여, 결전을 치뤄보도록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것이 대제사장이었고, 게쎄마네에서 체포하는 일에 유다가 적극적으로 조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물위를 걸으시던 일, 바람과 파도까지도 한 마디 호령으로 잠들게 하셨던 능력, 죽었던 사람을 셋 씩이나 살려내신 초월적인 힘, 그런 능력자이신 예수님께서 로마총독, 대제사장 나부랭이들에게 주눅이 드실 리야 없으실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유다의 작품인 ‘예수님 대 예루살렘의 권세가들’의 결전의 날은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대결자로 보였습니다. 일언반구 변명도 없었고, 벌거벗기움과 채찍질과 침뱉음과 십자가처형 등, 인간이 당하는 수모와 고통 중에서도 극치의 것들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저항 없이 그냥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는 ‘이게 웬 일인가?’ 놀랐을 것입니다. 왜 그 놀라우신 분, 예수님은 어디로 가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가장 극악한 죄수들만이 당하는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시는가,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도 실망하고, 자책감마저 들어서, 더 이상 세상에 살아남아 수치를 당하느니 차라리 죽자고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 2 )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됩니다. 그 중에서 성직을 지망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지도하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회의와 좌절을 느끼고, 괜히 교회 일을 시작했다고 상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유다처럼 교회 일을 ‘예수님 대 세상 권력자의 대결’로 맡겨 버리고, 자기는 관전이나 하다가, 이기는 쪽에 붙을려고 마음을 먹기도 합니다.

세상 역사의 역학은 ‘예수님 대 세상권력자의 대결’에서 대체로 예수님 편에 서는 사람들이 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중간에서 관전하는 무리들은 말할 수 없는 깊은 좌절에 빠지고 맙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묵상하실 일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모양의 예수님이기를 바라고 기독교인이 되지는 않았는가?(가리옷 유다의 경우)’, 아니면 ‘나는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일생 그분의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서 기독교인이 되었는가?’ (모든 성인들의 자세) 를 심각하게 묻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

<기도> 주 하느님, 저희가 어떤 세속적이고, 현실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려 하지 않았나 회개합니다. 저희를 사랑하여,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삶을 본받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