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섬김과 죽으심’을 기리자

<성주간 목요일, 본문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서신 } 코린토 신자들에게(I) 11장 23-26절 …. [23]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곧 주 예수께서 배반당하시던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린 다음, 그것을 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여러분을 위한 내 몸이요.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시오.”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쥐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요. 여러분은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시오.”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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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1 )> 오늘은 모든 교회가 주님께서 감사성찬례를 제정해 주신 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의 <속죄의 피>를 기념하면서 포도주 잔을 나눠 마시고, 또한 나누는 떡으로 주님의 몸이 찢기움으로 우리가 <구원 받았음>을 기념합니다.

이 본문 가운데 24절과 25절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시오.” 즉 포도주 잔을 나눌 때도, 떡을 나눌 때에도 똑같이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시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성찬 예식을 지키라는 명령문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사랑과 정의의 실천적 삶을 본받아 살라는 생활의 명령으로 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느 쪽이 맞느냐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념하여 성찬식도 드려야 할 것이지만, 또 성찬식을 마치고 헤어져서는 다시금 각자의 생활을 통해서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사랑과, 정의와, 거룩과,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며 사는 삶을 살라는 말씀으로 교회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전적 필요성도 담고, 삶의 실천적 사명도 담고 있다는 해석을 교회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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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요한 복음서 13장 1-17절 …. [1] 유월절 축제가 시작되기에 앞서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그분이 사랑하신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을 나눌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가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배반할 계획을 품게 했다. [3]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셨고, 또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심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아 주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말했다.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7]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하는 일을 그대가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오.” [8] 베드로는 예수께 말씀드렸다. “아니오.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그대를 씻어 주지 않으면 그대는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9] 베드로가 예수께 말씀드렸다. “그렇다면, 주님, 제 발 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들은 깨끗하다. 하지만 모두가 깨끗하지는 않다.” [11] 예수께서 이미 자기를 배반할 사람을 아시고 계셨다. 그래서 ‘모두 깨끗하지는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께서 그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자리에 앉아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일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소? [13] 여러분이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소. 나는 사실 그런 사람이오. [14] 여러분의 주이며 스승인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어 주었으면, 여러분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하오. [15] 내가 여러분에게 한 것처럼 여러분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오. [16]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노니,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사람은 파견한 이보다 높을 수 없소. [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여러분은 행복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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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2 )> 오늘은 예수님께서 감사성찬례를 건립하신 날임과 동시에, 세족례를 행하신 날임을 복음서를 통해서 봅니다. 공관복음이 이 날에 일어났던 사건 가운데 감사성찬례를 강조하는 데 비해서, 요한복음은 세족례를 가르치셨던 날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들의 상황을 보면, 감사성찬례의 빈도수에 비하면, 세족례는 1년에 한 번 정도, 그것도 국한된 몇 사람 만이 발을 서로 씻는 예식으로 간단히 끝냅니다.

그러나, 세족례는 예식을 행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남의 더러워진 발을 씻어 주는 정신>으로 살라고 친히 보이신 교훈이었다고 보입니다. 예식으로 하든, 필요에서 하든, 다른 사람의 발을 닦아주는 일, 그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남의 허물을 가리워주지는 않고, 그 허물을 사람들과 함께 흉보고 헐뜯기를 더 좋아하는 것이 인간세태 아닙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그 죄성을 고쳐 주시기를 바라셨습니다.

남의 발을 씻는 정신은, 남의 약한 점을 이해해주고 도우며, 남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고, 남의 잘못은 용서해주는 사랑의 자세로 살자는 주장을 말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모두가 이렇게 산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천국같이 되겠습니까?

전쟁이 사라질 것이고, 다툼과 갈등, 그리고 차별과 계급이 사라질 것이며, 폭력과 불법이 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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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주 예수를 통하여 가르쳐 주신 감사성찬례와 세족례의 삶을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예식으로도 저희의 삶으로도 저희의 푯대로 삼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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