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구약 } 잠언 24장 11-12절 …. [11] 너는 죽을 자리로 끌려가는 사람을 건져 주고, 살해될 사람을 돕는 데 인색하지 말아라. [12] 너는 그것이 ‘내가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겠지만, 마음을 헤아리시는 주님께서 어찌 너의 마음을 모르시겠느냐? 너의 목숨을 지키시는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시지 않겠느냐? 그분은 각 사람의 행실대로 갚으실 것이다.
{ 복음 } 요한복음서 15장 12-17절 …. [12] “내 계명은 이것이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15]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은 이것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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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디트리히 본회퍼(1906 – 1945)는 제2차세계대전 때에 독일 나치 정권에 항거하여 조직된 교단인 <고백교회>의 목사였고, 신학교수(핀켄발데신학교)였습니다. 그가 적지 않은 수의 독일 성직자들과 더불어 반나치 운동을 벌이고 있었던 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습니다. 나치 정권의 침략적 전쟁도발과 특별히 유대인 학살 등의 살인마적 행위를 강하게 비판했던 그들의 활동을 교회의 비정상적 행위로 인식하던 때의 일이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나치의 최고 통치권자 히틀러를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고, 이를 행동에 옮기려고 일을 추진하던 중 1943년에 나치에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하다가, 전쟁 막바지였던 1945년 4월 9일(오늘)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성직자가 정치활동에 뛰어들 수가 있는가?’ ‘더구나 당시에 독일인의 절대다수의 지지를 얻어 통수권자의 자리에 오른 사람을 제거(암살)를 하려 했다니,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일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런 질문들이 교회에서 제기될 수 있습니다. 당시 독일 교회 안에서도 그런 질문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디트리히 본회퍼가 믿고 판단했던 관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기독교인이 사회 현실을 보는 눈은 물론 성경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성경구절들이 성경에 낱낱이 쓰여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말씀들을 종합적이고도 다양하게 동원하여 하나 하나의 사회적 현상에 조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사회적 이슈들이 발생하는 근본에는 어떤 동기와 어떤 사상이 표방하는 목적들이 있어서, 그 요소들이 서로 작용하고 상충하면서 어떤 현상을 빚게 됩니다. 그것을 분석해 보노라면,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만 가지고는 판단하기 힘든 악마적 의도들이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악마적 힘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정치권력의 실체를 더 명확하게 파악하게 되고, 이윽고 이를 대처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이 떠오르게 됩니다. 이런 신학적 추적 끝에, 본회퍼는 실천지침을 마련했고, 이를 위해서 그가 헌신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록 가운데는 “교회는 타인을 위해 존재할 때에만 교회의 구실을 한다. …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스러운 선택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 할 때가 있다. … 은혜는 값싸지 않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는 큰 대가가 요구된다.”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현상을 바로 보려면 교회의 텍스트인 성경도 읽어야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사회적 현상이라는 컨텍스트(정황)에도 심오한 관찰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영적 분별력>입니다.
나치 군병이 유대인을 색출하고 있다고 합시다. 유대인을 체포하려 나선 나치 군병도 쫓기는 유대인도 하나님 앞에서 모두 불의한 인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 사이에 어느 쪽은 악령의 인도를 따르고 있고, 어느 편은 성령께서 염려하는 쪽이라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행해야 할 사명이 분명히 거기에 있습니다. 성령께서 염려하시는 쪽의 일이지요. 성령께서 염려하시는 쪽이 어느 쪽인가는 영적 분별력이 찾아냅니다. 그 분별에 의해서 성도는 행동합니다. 그 행동이 성도의 사명이고, 사랑이고, 성도의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에 맞서서 활동했던 신학자들 가운데, 20세기 대표적 조직신학자 칼 바르트(1886-1968, 스위스 민병대)를 위시해서, 마르틴 니묄러(1892 – 1984, 독일 고백교회 목사, 처음에는 나치를 지지하다가, 바뀌어 저항하는 편에 가담했음), 폴 틸리히(1886 – 1965, 20세기 대표적 신학자, 군목으로 종군), 라인홀드 니버(1892 – 1971, 기독교 윤리신학자), 윌리엄 템플 대주교(1881 – 1944, 영국성공회, 사회선교 신학자)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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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어느 시대에든 악령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정치지도자들을 똑바로 분별할 힘을 저희에게 주시옵소서. 또한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는 지도자들을 올바로 분별하여 그들과 합력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사회현상에 방관자로 살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편에 서서 작은 역할이라도 담당하며 책임있게 살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