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기란?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신복룡 신구약전서)

{ 만도 1과 } 코린토스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4:16-5:10 …. [4: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바깥 모습은 쇠퇴해지더라도 우리 내면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17] 우리가 지금 겪는 한때의 가벼운 환난은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18]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5:1] 우리가 지은 지상의 집이 허물어지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2] 우리는 이 현세의 장막에서 탄식하고 있지만, 이 장막 위에 하늘의 집을 덧씌우게 될 것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3] 우리가 이 장막 집을 벗게 될지라도 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4] 우리는 현세의 이 장막 속에 사는 동안 무겁게 짓눌려 탄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장막을 벗어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하늘의 집을 덧입기를 바라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이 죽음을 삼키기를 고대합니다. [5] 바로 이 일을 이루고자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보증으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6]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몸 안에 사는 동안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7]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8] 거듭 말하거니와, 우리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9] 그러므로 함께 살든 떠나 살든, 우리는 주님 마음에 들고자 애씁니다. [10]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각사람은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이 몸으로 행한 일에 따라서 하나님의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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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저희 늙은 내외가 아침에 침상에서 일어나자마자 대하는 성구가 있습니다. 제가 어느 날 삐뚤빼뚤 붓글씨로 써서 붙인 성구입니다. “…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고후 4:16, 공동번역 개정판) 이 말씀으로 저희는 위로를 받습니다.

( 2 ) 이 본문의 핵심인 4장 18절(“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과 5장 7절(“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의 말씀은 똑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도인 한, 우리들의 삶은 보이는 것에 기초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기초하여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눈에 요사이 자주 뜨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 눈에 가장 많이 뜨이는 것은 미국-이란 간의 전쟁입니다. 자칫하면 세계대전으로도 번질 가능성이 있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들의 살림살이가 기름값의 변동 여하에 따르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먼 곳에서 진행되고 있어도, 그 영향은 우리들의 생활에 직접 미치고 있습니다.

또 요사이 제 눈을 끌고 있는 것은 소위 ‘교회폐쇄 법안’으로 알려지고 있는 기상천외의 다수당의 입법활동입니다. 신앙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사회에 악을 끼치고 있는 종교현상을 불식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법이라고 하지만 그 법의 적용에서, 멀쩡한 신앙활동을 탄압하는 불의한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법의 귀추를 심각하게 주목합니다.

나라가 이념적으로 둘로 갈라져 있어서, 무슨 이슈가 대두하든, 나라는 평안치가 않습니다. 결국 이 현상이 우리들의 조국을 어떤 운명으로 끌고 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마는, 나라를 염려하는 모든 사람들의 눈은 현실을 방관할 수 없어서, 늘 눈이 사회의 큰 이슈들로 향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의 성경 말씀은, 제발 눈에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엄히 경계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보이지 않는 것에 뜻을 두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 3 ) 그래서 오늘,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조지 오거스터스 셀윈(1809 – 1878) 주교의 생애를 묵상하게 된 것이 오늘 우리들의 성경본문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명문 켐브리지 출신으로 일찍 성직에 올라, 그의 나이 서른둘이 되던 1841년 뉴질런드 신설교구의 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신대륙이었던 뉴질런드는 아직 도로와 교량이 건설되어 있지 않았고, 처처에 해적과 강도가 있어서 위험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더구나 셀윈이 선교의 대상으로 삼았던 마오리족 원주민들이 백인들에게 사냥질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양편에서 모두 해를 입을 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는 마오리족의 언어를 습득하고 그들이 당하고 있는 인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힘썼으며, 이것이 남태평양 일대를 복음화하는 일에 결정적인 효과로 작용해서, 그의 재직 기간 중에 뉴질런드를 기독교 터전 위에 세우게 했고, 남태평양 도서 지방에도 복음을 전할 수 있게 기여했습니다.

그는 진실로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었던” 믿음의 선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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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영원한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의 가치들에만 마음을 기울임으로, 장차 하나님께서 베푸실 포상에 뜻을 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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