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성령의 뜻임을 아는가?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 (성경전서 새번역)

{ 서신 차용 } 사도행전 4장 23-31절 …. [23] 베드로와 요한은 풀려나는 길로 동료들에게로 가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한 말을 낱낱이 일렀다. [24] 동료들은 이 말을 듣고서, 다같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아뢰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주님, [25]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인 우리의 조상 다윗의 입을 빌어서, 성령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민족이 날뛰며, 뭇 백성이 헛된 일을 꾀하였는가? [26] 세상 임금들이 들고일어나고, 통치자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과 그의 메시아에게 대적하였다.’ [27] 사실,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한패가 되어, 이 성에 모여서, 주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대적하여, [28] 주님의 권능과 뜻으로 미리 정하여 두신 일들을 모두 행하였습니다. [29] 주님, 이제 그들의 위협을 내려다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참으로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30] 그리고 주님께서 능력의 손을 뻗치시어 병을 낫게 해주시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표징과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해주십시오.” [31] 그들이 기도를 마치니,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고,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말하게 되었다.

{ 만도 2과 } 요한복음서 14장 8-17절 …. [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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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 )> ( 1 ) 성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또 교회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활동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는 명분 아래, 인간의 뜻으로 행하는 것인지를 어떻게 분별합니까?

이것은 주후 1세기 사도들의 교회로부터 문제가 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하여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별해 오고 있습니다.

가) 먼저 성경의 가르침과 맥을 같이하는가 여부를 알아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고(요 16:13),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요 17:17), 성도들과 교회들은 무슨 의문이 생기면 일단 성경에 묻습니다.

나)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면, 성령의 뜻이 아닐 가능성이 높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생각이거나, 그리스도를 높이는 생각이면 성령의 뜻과 부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요 16:14)

다) 성령의 뜻일 경우, 그 결과(‘열매’, 갈 5:22-23)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뜻이면, 사람들에게 사랑과 기쁨과 화평, 인내와 친절과 선함, 신실과 온유와 절제의 결과들을 줍니다.

라) 인간의 뜻일 경우에는 인간의 욕망을 성취시킬 뿐이지만, 성령의 뜻은 사람의 생명을 아끼고, 사람을 양육하는 데에 기여합니다.(롬 8:6-7)

마) 성령의 뜻인가를 묻기 위해서, 다소 과정이 힘들더라도, 교회공동체에 묻는 것이 옳습니다.(고전 14;29) 또 믿음의 선배들의 의견을 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고, 과거 교회공동체의 관례를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고를 할 뿐이지, 과거의 사례가 꼭 옳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바) 기도 가운데 거의 예외없이 성령의 뜻임이 확인되면, 그것이 성령의 뜻인 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영적 분별이 분명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 2 )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방법이나 방향이 항상 천편일률적이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순종의 상태나, 또는 시대적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철저히 순종하며 헌신한 믿음의 선배도 있었습니다. 존 콜리지 패터슨(1827 – 1871, 영국성공회 신도로서 멜라네시아에 신설 선교교구의 주교로 파송되었음)을 소개해 드립니다.

패터슨은 런던 이튼 스쿨과 옥스포드 발리올 칼리지에서 공부했습니다. 출세길이 환히 열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 속에 남달리 ‘아직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부담감’ 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도서에 선교사로 떠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멜라네시아 도서의 섬마다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서 일단 현지어를 습득하는 데에 정열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현지 어린이들을 모아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서 신앙 속에 자라도록 인도했고, 그들을 복음전파자로 양성하여 출신지방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패터슨은 남태평양 원주민들에게 서양 문물을 가르치는 것보다, 자신이 그들의 토속을 배우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백인 해적들이 곳곳에 출몰하여 남태평양 이 곳 저 곳의 섬들을 공격해서 원주민들을 붙잡아 유럽 국가에다 노예로 팔아먹는 일이 빈번하게 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은 점차 백인은 ‘위험한 침략자’ 라는 인식이 박히게 되었고, 이윽고 존 패터슨도 그런 류의 인간으로 취급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871년 어느 날, 한 섬에 방문했다가, 원주민에게 공격을 당해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영국 멜라네시아선교회는 셀윈(지난 주 토요일 제가 소개한 선교사)를 파송하여, 현지의 원주민 복음전파자들과 더불어 패터슨의 유업을 이어감으로, 멜라네시아 선교는 계속 활발하게 이루어져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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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 하나님, 저희가 늘 말씀과 기도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 하나님 나라에 이바지하도록 도와 주소서. 오늘날 온 세계가 성령의 인도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모른 채, 방황하며 혼란 속에 있사오니, 주여, 성령의 뜻을 바로 깨닫는 자들에게 더욱 영적 통찰력과, 순종의 용기와 확신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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