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마음을 찌르듯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누가복음 2장 35절: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개역개정)

제 막내 동생이 아주 오래 전에 맹장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가운데 제일 간단한 수술이라는 맹장수술도 제 혈친이 수술을 할 때에는 왜 그리도 조바심이 나던지, 35분간 수술실 밖에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엉뚱하게도 자꾸만, 병원에 정전이 되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까지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수술 때에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때에는 그런 방정맞은 생각마저 나 가지고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는지요?

형제는 2촌이라니까, 1촌인 아들 딸의 경우는 아픔을 더 깊이 나누는 사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성모이신 마리아는 아드님의 공생애를 통하여, 아드님 예수께서 겪으신 고통을 함께 나누신 분이십니다. 그가 가시는 곳 어디서든 환영을 못 받으시고 배척을 당하시는 모습을 보시면서 많이 괴로우셨을 것입니다.

성모의 가장 큰 아픔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에, 로마 병정들이 아드님의 손과 발에 못질을 할 때, 그 망치소리, 그리고 아드님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 그 몹쓸 로마병정들의 표정, 순간 순간 아드님과 몸의 전률을 함께 느끼면서 보고 계셨을 때였습니다.

예루살렘의 경건한 사람 시므온이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르듯 할 것입니다” 하던 말씀이 정말 그대로 성모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안중근 열사가 사형선고를 받고, 형 집행날짜가 가까운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옥중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우리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이런 편지를 썼던 어머니의 마음을 누가 가히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김용의 선교사가 들려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에게 다섯 자녀가 있는데, 지금 모두 장성해서 아버지의 믿음을 닮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선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 선교사님이,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 라는 무슬림권 나라에 가서 일하는 아들을 만나고서 돌아오던 날, 아들의 방안에 남겨 두고 온 ‘아버지의 메시지’가 있었다 하며, 예수원에서 저희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내 아들아, 땅끝에서 죽어서, 하늘 복판에서 만나자” 라고. 이 말이 그렇게 제게 감동을 주고, 제 마음을 때려, 예배실 구석에 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기도> 주님, 주님의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때로 “칼로 마음을 찌르는” 아픔을 겪을 수 밖에 없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고통을 면하고자 애쓰기보다는, 이 고통을 당하는 날에 잘 감당할 수 있게 힘과, 용기와, 인내와,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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