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8장 29절: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개역개정)

사람은 제 각기 사는 목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달리 노력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가 뭘 위해 사는 사람인지를 인식해 줍니다.

가령, 제 아버지가 다니시던 대학교에 생물학 교수가 있었는데, 그 분이 지렁이 연구에 권위자였답니다. 연구실로 가던 길에 아주 큰 지렁이를 만났답니다. 담아 갈 그릇이 없어서 주춤거리다가 자신의 입에다 물고 연구실까지 갔답니다. 그가 왜 사는지는 이것 하나만 봐도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평생 분명한 목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제 별명이 중학생 시절에는 ‘목사’(늘 얌전했으니까), 신학과 학생 때에는 ‘음대생’(맨날 음대에 가서 노니까), 고등학교 교사 시절에는 ‘부시시’(머리칼이 단정치 않아서), 어느 단체 사무실에서 일할 때에는 ‘학운도사’(걸음걸이가 느리다고), 이런 다양한 별명으로 불리웠습니다. 뚜렷한 인생의 목표가 제게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정답을 말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메시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이때 주님께서는 아, 이제 ‘내 때가 가까이 왔구나’ 하고 판단하셨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언덕에 올라, 속죄제를 드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의 길을 여실 때가 되었다는 판단을 하신 것입니다.

원종수 박사는 암내과 전문의입니다. 그분이 미국 공항에 자신을 데리러 나온 ‘딘’이라는 이에게 “기독교인이세요?” 라는 평범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대답은 했지만, 평생 딘의 질문을 “당신은 진정한 기독교인이세요?” 라는 질문으로 기억하면서 살고 있답니다. 그래서 그는 의사로서 복음전도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이웃이 여러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기독교인 냄새는 피우지 않지만, 사는 모습을 보니 기독교인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이웃이 여러분을 인식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만족해도 좋겠습니다.

저는 인터넷 뉴스에 달린 댓글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우리마을 촌장, 김성수 주교’ 라는 제목의 뉴스를 보다가 거기 달린 댓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이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김성수 주교를 보면 기독교가 진짜 종교인 것을 알겠습니다” 고 했습니다.

92세이신 김 주교가 촌장인 ‘우리마을’은, 연전에 화재를 만나 콩나물 공장이 전소되었지만, 이제 새로이 건물을 짓고 다시 발달장애인들의 직장으로 재가동되었습니다. 이 분이야말로 성령께 사로잡힌 분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오늘 ‘내’가 어떻게 남에게 인식되고 있는지 한 번 묻고 싶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에게 이 세상에 살아 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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