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려고 세상 사는 사람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마가복음 10장 45절: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새번역)

지난 주일(2월 7일)이 돌아가신 제 어머니의 탄신 100 주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왜 이 세상에 오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목사로 사신 제 아버지와 결혼하시러 오셨겠지. 왜? 저희 일곱 남매를 낳으시려 그러셨겠지. 왜? 무척 고생 많이 하시려고 그러셨겠지. 왜? 무척 고생하시다가 가시려고. 왜? 왜는 왜야, 그게 끝이지.’

저는 열 한 살 때에 부산 대청동에서 피난살이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동복에 재봉 수를 잘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국제시장 제품업자들이 제 어머니에게 다투어 주문을 했습니다. 덕분에 저희가 먹고 살았습니다. 밤을 새워도 일을 마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칸방에서 밤새 불을 켜놓고 시끄럽게 재봉틀을 돌려야 하셨기 때문에 저는 잠을 설치는 것이 대단히 불만이었습니다. 잠을 좀 잘 잤으면, 이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밤새 꼬박 일을 하시고도 저희들을 위해 아침밥을 지으시러 부엌으로 나가시는 어머니의 고생을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은사님은 이석찬 선생님이십니다. 중학교 1학년 때의 영어 선생님이십니다. 그 분은 저희들을 가르치시는 동안에 환갑을 지내셨고, 불행히도 그의 아드님 상을 당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례 다음 날 저희 수업에 들어오셔서 평소처럼 웃으시며 유모어를 섞어 말씀도 하셨습니다. 비록 철없던 저희들이었지만,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분이 저희에게 주신 말씀은 “너희들은 이 다음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어른들이 묻거든 이렇게 대답해라. ‘저는 뭐 대단한 꿈은 없어요. 물론 제 직업이야 뭔가 있게 되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저 길에 버려진 휴지를 줍고, 그러면서 살고 싶어요.’ 이렇게 대답하거라. 그만한 꿈이 더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무슨 고매한 진리를 깨우쳐야 하는, 소위 종교가 아닙니다. 초자연적인 존재를 신비롭게 경험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인이 되는 필수의 과정도 아닙니다. 특별히 사람들을 강제해서 기독교를 믿으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받듭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극정성으로 섬기신 인간을 우리도 잘 섬기게 하려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저는 얼마나 기독교인다운 삶이 가치가 있는 일인가를 제 어머니에게서 보았고, 어떻게 기독교인답게 살 수 있는가를 제 은사님에게서 배웠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섬김’으로 시작해서 ‘섬김’으로 완성하셨습니다.

<기도> 저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 예수님, 섬김의 극치를 보여 주신 주님에게서, 저희의 이웃을 받드는 삶의 본을 배우게 하셨나이다. 그 본을 따라 저희도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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