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모어를 추모함

<교회력에 따른 말씀 묵상>

시편 5편 4-8절 : 주님께서는 죄악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악인은 주님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교만한 자들 또한 감히 주님 앞에 나설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악한 일을 저지르는 자들을 누구든지 미워하시고, 거짓말쟁이들을 멸망시키시고, 싸움쟁이들과 사기꾼들을 몹시도 싫어하십시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크신 은혜를 힘입어 주님의 집으로 나아갑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성전 바라보며, 주님께 꿇어 엎드립니다. 주님, 나를 대적하는 원수를 보시고, 주님의 공의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 내 앞에 주님의 길을 환히 열어 주십시오. (새번역)

오늘은, 1535년 7월 6일, 상식과 양심을 따르는 것이 기독교 신앙과 일치한다는 신념에서, 목 베임을 당해 죽는 길을 택한 토마스 모어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영국의 왕 아서가 1502년 갑자기 죽습니다. 그의 동생 헨리 8세가 형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그리고 미혼이었던 헨리 8세는, 스페인과의 동맹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형의 미망인인 아라곤의 캐서린(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의 딸)과 1509년에 결혼했습니다.

이때, 형제의 미망인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성서구절(레위기 20장 21절)에 의거하는 교회법에 위반되지 않으려고, 교황 율리오 2세로부터 관면을 받아냅니다. “전 남편 아서와의 결혼은 사실상 완성되지 않았다”는 형수 캐서린의 진술이, 또한 교황의 이 관면을 얻어내는 데에 일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 생활은 무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캐서린이 후계자인 아들을 낳지 못하자, 헨리 8세는 결국 캐서린 왕비의 시녀인 엘리자베스 블런트에게 매혹되었으며, 나중에는 엔 볼린이라는 여인에게도 마음을 뺏겼습니다.

그리하여 1527년 헨리 8세는 영국의 추기경 토마스 울지에게, 앞서 캐서린과의 혼인을 무효화 해 줄 것을 교황 클레멘스에게 탄원해 달라고 지시했습니다. 헨리 8세는, 교황이 성서 말씀보다 우위에 설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전임자 교황 율리오 2세가 내린 ‘형수와의 혼인에 대한 관면’을 원인무효라면서, 효력이 없음을 인정해 달라고 강요를 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교황은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헨리 8세는 울지를 대법관직에서 사임시키고, 1529년 10월에 토마스 모어를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후, 헨리 8세는, 교황은 단지 로마교구의 주교에 불과하며, 따라서 전체 교회에 대한 수장권을 지닐 수 없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는 토마스 모어에게, 캐서린과의 결혼이 성서에 위배되는 것이니, 그의 이혼에 동의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모어는 이를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헨리 8세는 그를 런던탑(감옥)에 1년 2개월을 가두어 두었지만 끝끝내 캐서린과의 이혼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헨리 8세는 그에게 대역죄에 해당하는 칼로 목을 잘리우는 형을 내립니다. 486년 전 오늘 그는 군중을 향하여 “나는 하나님과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가 먼저입니다. 하나님, 선하신 분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말을 마치고 칼잡이에게 부탁합니다. “여보게, 힘을 내게. 그리고 자네가 할 일을 두려워 말게. 내 목은 아주 짧으니 제발 제대로 쳐 주게.”

그는 수염을 단두대 너머로 밀치면서 “수염이야 대역죄를 지었겠나” 라고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무지와 불법이 난무하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받들고 살아가는 이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주님, 저희에게 힘을 주시고, 엄정하신 바른 판결로써 진리와 정의를 밝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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